몇몇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단지 미국인 중 10퍼센트 정도만이, 우리가 철저하게 자연적인 진화 과정의 우연한 부산물이라는 다윈의 이론을 믿는다고 한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진화를 인도하셨건 생명을 직접 창조하셨건 간에, 하나님이 그 과정 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유사한 여론조사가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과 같은 목적없는 자연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진화가 일어났다는 다윈의 이론 동의하는 것과 같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당신 자신의 캠퍼스에도 해당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학문사회와 일반 대중 사이의 이러한 불균형은 대중들에 대한 더 나은 교육이 긴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에 따르면, 이것은 우리의 교육 기관들이, 자연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하나님과 영혼은 단순히 인간 마음의 고안물이라는 철학적인 주장인 자연주의에 의해서 교란되었다는 것을 드러낸다고 한다.
ACCORDING TO DARWINISM, OUR EXISTENCE IS A MERE ACCIDENT 다윈주의에 따르면 우리의 존재는 단순한 우연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1859년에 종의 기원 The Origin of Species을 썼을 때, 대부분의 서양 과학자들은 하나님이 살아있는 생물들(특히 인간을)을 설계에 의해서 창조하셨다고 믿는 기독교 유신론자들이었다. 그러나 다윈에 따르면 살아있는 생물들에서 나타나는 설계된 것과 같은 겉모습은 무작위적인 변위들과 자연선택의 산물과 같은 자연주의적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다윈은 모든 종들의 개체들이 작은 변이를 드러낸다는 것과, 가정의 육종사들은 그러한 변이들을 다음의 세대들을 변화시키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들에 주목했다. 또한 다윈은 야생에서의 생물들은 제한된 자원(식량과 같은)을 두고 경쟁해야만 한다는 것과, 그들의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가 생존해서 자손을 남기기가 더 쉽다는 사실들에 주목했다. 다윈은 육종사가 가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자연선택"도 야생에서의 종들을 변화시킬 수 있고, 수 백만 년동안 계속된 "변화를 가진 후손들descent with modification"은 하나 또는 소수의 원시 형태에서부터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이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설계를 위한 어떠한 여지도 보지 못했다. 그의 친구이 자 지지자인 아사 그레이Asa Gray가 하나님께서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변이들을 설계하셨다고 제안했을 때, 다윈은 이 생각을 거부했고, 1868년에 그레이의 입장에 대한 논박을 담은 Variation of Animals and Plants Under Domestication에서 논박을 마무리 지었다. 다윈에 따르면, 무작위적인 변위와 자연선택의 산물들은 설계된 것으로 고려될 수 없다; 설계되지 않은 일련의 생물 종들의 최신형으로서의 인간은 모든 것중에서 가장 우연히 만들어진undesigned 것이다.
현대의 다윈의 추종자들은 이러한 설계에 대한 거부에 동의한다. 1967년에 고생물학자인 조지 게이로드 심슨은 "인간은 인간을 마음에 두지 않는 목적없고 자연적인 과정의 산물이다."(1)고 썼다. 1970년에 분자 생물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자크 모노Jacques Monod는 "다윈주의 메커니즘은 결국 확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인간은 단지 우연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2)
DARWIN'S DENIAL OF DESIGN IS A SERIOUS PROBLEM FOR CHRISTIANS AND OTHER THEISTS 다윈의 설계에 대한 거부는 기독인과 다른 유신론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설계되지 않은 목적없는 과정의 부산물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성경적인 교리는 틀린 것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설계에 의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바로 기독교(그리고 이슬람이나 유대교와 같은 다른 유신론적인 종교)의 중심 교리이다.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의 연대기가 기독교와 다윈주의 사이의 충돌의 근원이라는 인상을 받아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적인 연대기는 다윈의 이론에 대한 초창기의 반대에서는 거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19세기의 기독인들은 지구의 연대에 대한 지질학적인 증거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에서도 창조론자인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오래된 지구 관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연대기는 쟁점이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말해서, 기독교와 다윈주의 사이의 기본적인 충돌은 연대기가 아니라 설계이다.
어떤 유신론자들은 다윈주의자들의 설계에 대한 거부만을 제외하고서 다윈주의자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모든 것들을 다 수용하는 것으로서 문제를 피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다윈주의는,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자연주의는 객관적인 실재의 모든 것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다윈주의를 받아들이는 유신론자들은 순전하게 종교를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갖고 있는 것이 되고, 설계는 우리의 상상이 꾸며낸 것이 된다.
다윈주의적인 진화와 유신론적인 종교를 화해시키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대립이 둘 사이에 남아있다. 그들 자신들을 다윈주의적인 진화에 적응시키려는 유신론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들 스스로가 보호되고patronized 사회적으로 처지게 된marginalized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유신론자들이 다윈주의적인 진화를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IS DARWIN'S THEORY TRUE? 다윈의 이론은 옳은가?
우리는 중력이나 지구의 모양을 부인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진화는 사실이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진화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학문적인 기반에서는, (다윈을 대중화시키는 사람인 리처드 도킨스의 말에 따르면) 무식하고, 어리석고, 제정신이 아니고, 사악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쉽다.(3) 미국에서, 진화에 질문하는 종교적인 사람들은 종종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의 헐리우드 버젼인 1960년대 영화 "바람의 상속자Inherit the Wind"들에 의해서 촉진된 창조론자들의 희화와 연관되어 진다.
그러나 "진화"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단순히 변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식물과 동물들은 언제나 존재한 것은 아니고, 예전에 존재했었던 어떤 생물들은(공룡과 같은) 더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의 진화는 분명히 사실이다(유신론자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주지 않는다) "진화"의 두 번째 의미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하나 또는 소수의 공통 조상common ancestors으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계승되어진 것이라는 개념이다. 공동 후손common descent에 대한 증거는 일반적인 변화에 대한 증거보다는 훨씬 더 논쟁의 여지가 많지만 생물학자들은 종종 특정한 식물과 동물군들이 공통의 조상을 공유하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대해서 논쟁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공동 후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유신론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다윈의 이론을 거부하는 90%의 미국인들 중에서 대략 절반 정도는 이러한 진화의 개념을 받아들인다.
"진화"의 세 번째 의미는 군집populations이 무작위적인 변위와 자연선택을 통해서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을 지지하는데에, 다윈은 가정의 육종을 언급했다 ; 가정의 농작물 또는 가축들에서의 극적인 변화들은 작은 변이들의 적절한 선택들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 1859년 이래로 유사한 과정들이 야생에서 관찰되어 왔다.; 모기들이 살충제에 노출되었을 때, 다음 세대들은 보다 영향받기 쉬운 개체들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살충제에 더 저항력이 생기게 되었다. 나방들이 포식 새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다음 세대들은 보다 잘 보이는 개체들이 먹혀버렸기 때문에 보다 잘 위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무작위적인 변이들의 자연선택을 통해서 변화가 발생한다는 것에 대한 주목할만한 증거가 있다.
그러나 얼마나 변하는가? 위에서 언급한 예들에서는 새로운 종은 나타나지 않았고 새로운 특징도 나타나지 않았다. 가정의 육종은 양을 염소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고, 새나 고래로는 더욱 바꾸지 않을 것이다. 새의 포식은 나방을 나비로 만들지 않을 것이고 개미나 딱정벌레로는 더욱 아니다. 생물학자들은 그들이 "소진화microevolution"라고 부르는 종들 내에서의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들과, 두드러진 새로운 특징이 필요로 하는 그들이 "대진화 macroevolution"라고 부르는 훨씬 더 큰 변화들 사이의 차이를 오랬동안 인지하고 있었다. 세 번째 의미(무작위적인 변위들과 자연선택을 통한 변화)에서의 진화는 소진화에 적용되었을 때는 사실이지만, 대진화에 적용되었을 때에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의미에서의 진화(시간이 지나면서 변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의미의 진화(모든 생물들이 하나 또는 소수의 형태의 후손들이다)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세 번째 의미의 진화(무작위적인 변위와 자연선택 때문에 변한다)는 소진화에 적용되었을 때에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진화가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인가? 설계의 문제에 대한 다윈주의와 유신론사이의 대립은 거대한 규모의 진화가 본질적으로 목적없는 과정 때문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에서만 발생한다. 아직도 다윈의 대진화에 대한 소진화의 외삽은 생물학자들사이에서 뜨겁게 논쟁되고 있다.
1985년에 분자생물학자인 마이클 덴턴Michael Denton은 "그러나 특정한 정도의 진화가 발생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또 다른 수준의 진화가 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는 않는다. 그것을 흥미로운 외삽이다."고 썼다. 사실, "1859년 이후로 그 외삽을 유효하게 만든 경험적인 발견이나 과학적인 발전이 단 한 개도 없었다."(4) 다시말하면, 여러 가지 다른 "진화"의 의미들 중에서 다윈주의적인 대진화는 증거에 의해서 가장 덜 지지를 받는다.
WHY THE EVIDENCE DOES NOT SUPPORT DARWIN'S THEORY OF MACROEVOLUTION 증거가 다윈의 대진화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
우리는 종종 진화에 대한 증거는 압도적으로 많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진화"가 단지 일반적인 변화를 의미할 때는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진화가 무작위적인 변위와 자연선택을 통한 대진화를 의한다면, 그 증거는 기껏해야 별로 감명을 주지 못하는underwhelm 정도이다.
예를 들어, 화석들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확증한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화석 기록은 다윈주의적인 대진화의 옹호자들을 당황시킨다. 무작위적인 변위와 자연선택을 통한 소진화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은 이런 변화가 아주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의 격변적인 불연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윈 자신도 그의 이론이 맞다면, 화석 기록에서 셀 수 없는 과도기적인 형태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화석을 더 많이 모을수록 더 많은 형태들이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다윈이래로 한 세기와 반세기 동안의 화석 수집은 화석상의 종들은 갑자기 등장한 다음에 그들이 멸종하게 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에 변하지 않은 채로 지속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만들었다. 변화의 부재에 의해서 구분되는 이러한 갑작스런 출현과 소멸은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에 의해서 "단속 평형punctuated equilibria"이라고 불렸다. (5) 단속 평형은 해양 무척추동물과 같은 화석 기록이 가장 완전한 곳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가장 극적인 예는 "캠브리아의 대폭발Cambrian explosion"이다. 캠브리아 시기로 알려진 지질학적인 기간은 지금 존재하는 동물들의 모든 기본적인 형태의 갑작스런 등장했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들 사이에는 어떠한 과도기적인 형태도 존재하지 않고, 그 때 이후로 새로 등장한 기본적인 형태는 없다.
다윈주의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단속평형의 패턴이 다윈적인 진화를 실제적으로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화석기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윈이 진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굴드와 엘드리지는 모두 진화가 발생했다고 계속해서 믿는다. 비록 그들은 진화는 누구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는 "저기 어디에서over there" 일어났음에 틀림없다고 인정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비록 다윈은 전이하는 형태들의 화석이 안정된 형태들의 화석들보다 훨씬 더 수적으로 우세할 것이라고 확신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요점은 다윈의 대진화에 대한 설명을 화석 기록을 통해서는 추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다윈의 메커니즘이 화석의 원인이 되었다고 가정을 한 후에, 다윈의 메커니즘을 화석 기록에 맞춰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가정이 없이는, 화석에서 생물의 형태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특징은 진화한 것이라기 보다는 (특수) 창조 때문인 것으로 추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속평형을 진화에 반대되는 증거로 생각하는 창조론자들에 대응해서, 다윈주의 옹호자들은 전이 화석의 몇 가지 예들(아마도 가장 유명한 말의 화석과 같은)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초기의 화석상의 "말"은 대략 개의 크기 만했고, 네 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의 화석상의 말들은 하나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는 현대의 거대한 말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몸집이 커졌고 더 적은 수의 밝가락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고생물학자들도 그러한 화석상의 말들 중에서 어떤 것이 다른 것의 직접적인 조상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러한 순서는 우리에게 중간적인 형태의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연속적인 생물종들의 예를 제시해 준다.
그러나 중간형태 조차도 다윈주의적인 대진화를 지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화석들이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한 변화를 나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생물학자인 팀 베라Tim Berra에 의해서, 1990년의 그의 책 [the Myth of Creationism]에서 무심코 제시되었다. 베라에 따르면, 고생물학자들이 화석을 가지고서 하는 것은 1953년 모델에서 오늘날 버전에 이르기까지 Corvette 자동차에서의 연속적인 발전을 추적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한다.(6) 베라가 명백하게 깨닫지 못한 것은, Corvette 자동들은 부인할 수 없이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중간 형태들의 연속물들은 그 자체에 의해서는 다윈의 이론을 확증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화석기록은 다윈주의적인 점진주의와는 모순되고, 전이 화석의 몇몇 예들은 진화가 다윈주의적인 메커니즘을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을 예증하는데 실패했다. 사실, 일부 과학자들은 지금, 다윈의 이론은 그런 증거들을 설명할 수 없고, 지적 설계가 더 좋은 설명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INTELLIGENT DESIGN THEORY 지적 설계 이론
다윈주의자들은 다윈의 이론이 우리가 화석에서 발견한 과거의 생물들 뿐만 아니라, 생물들이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움직이고, 빛을 감지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등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복잡한 분자적인 메커니즘 또한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Lehigh 대학의 생화학자인 마이클 베히Michael Behe는 다윈의 메커니즘은 그러한 생화학적 메커니즘들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히는 살아 있는 세포들의 몇 가지 특징들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을 드러낸다고 주장하고 있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 어떤 시스템을 이루는 모든 부품들이 처음부터 정해진 위치에서 완전한 작용순서로 있을 때에야만 그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쥐덫은 쥐를 잡기 위해서 함께 작동하는 몇 가지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떠한 부품이 없거나 불완전하다면, 쥐덫은 제대로 작동하는데 실패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빛을 감지하는 생화학 시스템은 각각이 아주 특수화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서로 다른 많은 분자들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다윈의 이론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필요한 분자들의 조합이 하나씩 조직될 수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모두 제 위치에 존재하거나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7)
베히에 따르면 살아 있는 세포의 복잡한 생화학적인 기계들이, 세부 사항이 알려지지 않은 "블랙 박스black box"로서 남아 있는 한은 다윈의 이론은 분명히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현대 과학은 그 블랙 박스를 열었고, 다윈의 이론은 더 이상 개연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무작위적인 변위와 자연선택 대신에 베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으로서 설계design를 주장하고 있다.
베히에 대한 비판가들은 설계는 과학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Notre DAme 대학의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와 Whitworth 대학의 스티븐 메이어Steven Meyer와 시카고 대학의 폴 넬슨Paul Nelson은 그러한 비판이 틀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 세 사람의 과학철학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과학적인 설계 추론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시험할 때에는 언제나 설계 추론을 사용한다. 우리는 해변의 모래에 써진 단어들을 우연적인 물결의 운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보다는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론한다. 그리고 다른 은하로부터 온 메시지를 찾고 있는 과학자들은, 그들이 그 메시지를 봤을 때 설계를 인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뎀스키와, 메이어와 넬슨은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설계를 추론할 때 사용했던 동일한 기준이 살아있는 생물에서의 설계 추론에서도 정당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살아 있는 생물들의 어떤 양상들은 설계의 결과로서 그럴듯하게 설명될 수 있고, 그러한 설계 추론도 다른 형태의 추론들 만큼이나 과학적으로 될 수 있다.(8) 그렇다면 다윈주의자들은 왜 설계가 비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들의 일반적인 답변은 살아 있는 생물에서의 설계는 아마도 하나님의 작품이 되어야만 할 것이고, 하나님은 자연과학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윈주의자들은 그들이 못마땅해 하는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증거나 과학적인 추론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 철학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석기록의 경우에서처럼) 증거가 이론을 지지하는 것이 실패했을 때, 그들은 그 이론을 증거에 맞도록 해석해 버린다. 다시 말하면 다윈주의자들은 반종교적인 철학을 진흥시키기 위해서 과학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IT'S TIME FOR A REVOLUTION IN EVOLUTION 진화에서 혁명이 일어날 시기이다.
당신의 대학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당신은 당신의 선생님들과 동료 학생들에게 정중하고 지적인 질문을 던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화는 우리가 목적이 없는 자연적인 과정의 우연적인 부산물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말한다면, 증거를 요구하라. 아마도 당신은 지질학적인 연대기, 또는 일반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에 대한 화석상의 증거, 또는 무작위적인 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서 일어나는 소진화의 증거, 또는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특정한 공통조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답변으로서 받게 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받은 그러한 증거들이 지적 설계와도 모순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설계는 비과학적이라는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계의 개념 자체가 비과학적이라면, 왜 과학인 것으로 여겨지는 다윈의 이론은 설계를 반박하곤 하는 것일까? 당신이 그 질문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용감하다면, 당신은 아마도 당신 자신이 무지와, 어리석음과, 정신이상 또는 사악함으로 비난받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맹렬한 반대(heat)에 대항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지속적으로 캐묻는 작업이 엄청나게 강력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왕이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던 동화속의 소년처럼 말이다. 다윈주의자들이 진화의 증거는 설계를 배제시킨다고 주장할 때, 그들이 항상 언급하는 증거들은 부적절한 것이거나, 설계를 가지고 했을 때에도 설계를 가지고 하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모순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반대에 직면했을 때, 다윈주의자들은 전형적으로 설계가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설계를 배제시키려고 시도한다. 바로 앞에서는 그들이 증거에 의해서 거부되는 하나의 과학적인 가설로서 설계를 다루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을 다윈주의자들은 그런 식의 모순적인 입장---한편에서는 설계를 과학적으로 반박하고, 다른편에서는 설계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하는---을 모두 취할 수는 없다. 그들은 설계에 반대되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증거를 사용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또 다른 도전이 있을 때, 그들은 과학은 설계를 전혀 다룰 수가 없다고 주장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최상의 과학은 증거가 어디로 이끌던지 간에 증거를 따라간다. 진리의 탐색자로서, 과학자들은 질문의 양측면을 고려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만일 진화의 증거가 설계의 부재를 추론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면, 증거는 또한 설계의 증거를 추론하는데 합리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리고 설계가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에 손상을 가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만일 설계가 과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라면, 적어도 질문의 양측면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윈주의자들은 자연주의는 유일한 답변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 사람의 90퍼센트는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의 대학 캠퍼스들을 지배하고 있는 철학적인 자연주의자들이 그들의 동료 시민들과의 심각한 토론에 참여해야할 시기이다.
당신이 당신의 캠퍼스에서 다윈주의에 도전한다면 그것을 매우 거칠고 힘든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계속해서 주장을 한다면, 당신은 성장하고 있는 지적인 혁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9) 왕은 옷을 입고 있지 않고 있고, 지금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줄 시기이다.
NOTES
George Gaylord Simpson, The Meaning of Evolution, revised edi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67), p. 345.
Jacques Monod, quoted in Horace Freeland Judson's The Eighth Day of Creation (New York: Simon & Schuster, 1979), p. 217.
Richard Dawkins, review of Donald Johanson & Maitland Edey's Blueprint in The New York Times, April 9, 1989, sec. VII, p. 34.
Michael Denton,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Bethesda, MD: Adler & Adler, 1985), pp. 87, 345.
Niles Eldredge and Stephen Jay Gould, "Punctuated equilibria: an alternative to phyletic gradualism," in T.J.M. Schopf (ed.), Models in Paleobiology (San Francisco: Freeman, Cooper & Co., 1972), pp. 82-115.
Tim Berra, Evolution and the Myth of Creationism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pp. 117-119.
Michael Behe, Darwin's Black Box: The Biochemical Challenge to Evolution (New York: The Free Press, 1996).
For a more extensive treatment of design in biological origins, see Of Pandas and People, second edition, by Percival Davis and Dean Kenyon (Dallas, TX: Haughton Publishing Company, 1993).
A prominent figure in this revolution is Berkeley law professor Phillip E. Johnson. For further information, see his Darwin on Trial, second edition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3) or his upcoming book, Defeating Darwinism -- By Opening Minds, to be published by Intervarsity Press in July, 1997.
조나단 웰즈는 UC 버클리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한 워싱턴 시애틀에 있는 Discovery 연구소의 Fellow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