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성경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하느니라"(전도서 1:2, 3, 18, 12:12)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평생을 무엇에 쫓기듯 분주히 살고 나서 죽음이 가까이 오면 어느날 문득 "인생의 수고가 헛되다"고 힘없이 내뱉는가 하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지혜와 지식을 찾아 동분서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다른 번뇌와 근심을 더해 가는 이율 배반적인 삶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어 보다 나은 인생의 길을 알게 하고, 무엇인가 찾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은, 여러 책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케 할 뿐이라 결국은 그것이 헛될 따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사람이 만들어 내는 책이란 결국 사람이 노력하고 연구해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시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인생은 무엇인가를 잃었으며 그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의 대상이며 지혜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찾는 과정에서 종교나 철학, 문학, 예술 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들은 그 나름대로 인생에 관한 답을 제시합니다. 왕궁에서만 자라서 세상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석가는 어느날 성 밖으로 나갔다가 허리가 굽어져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는 백발의 노인을 보았으며, 또 죽은 사람을 장사하려고 떠나가는 장의 행렬도 보았습니다. 여기서 그는, 사람이란 태어나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끝없는 명상에 잠기게 되었고 고행을 통하여 인생의 고뇌에서 해탈함으로써 해결을 얻으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것이 팔만대장경이란 불교 경전의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속에는 인생 문제의 고뇌를 풀어 주는 것이 팔만대장경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일고 내심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어느 날 버스를 탔을 때 어느 스님과 함께 앉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스님 생활을 몇 년이나 했으며 찾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30년간 수도 생활을 했는데 아직도 찾는 중입니다." 그때 나는 속으로 '무엇을 찾는지 모르지만 무척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찾을 수 없는 것이며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왜냐하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종교적인 이론은 전부가 추상적인 사고에서 나온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실에 근거한 구체화된 '실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교리는 인간의 추리와 가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렇게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저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는 의견만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과학처럼 실험을 거쳐 명백한 해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종교 이론과 경전이 나왔어도 인생이 찾고 있는 문제가 확실히 해결된 사실은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철학하루는 우연히 철학책을 손에 들게 되었는데, 그 서론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철학이 아직 인생에게 해답을 주지 못했다고 씌어 있었기 때문입니다.철학은, 인생이 무엇이며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등 수없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그 정의에 따라 삶을 가르치려고 시도합니다. 종교의 길이나철학의 길은 결국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 속에서 종교를 다루고 종교 역시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양 철학은 종교이면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이며 헬라 철학 속에도 신의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철학이 인생을 논해도 인생의 의미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같은 운명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물에 떠내려 가고 있는 사람은 물에 빠지지 않은 사람의 힘이나 생각에 의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성경에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베드로전서 1:24)라고 했습니다. 인생의 육체나 그 누리는 영광이 풀의 꽃처럼 마르고 떨어져 시들어 버릴 운명인데, 그 운명 속에서 시들지 않을 운명을 개척하거나 알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성경에서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골로새서 2:8)라고 말하면서 철학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철학의 길을 통해서는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말씀을 보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헛되다고 했고, 지혜나 지식은 번뇌와 근심을 더할 뿐이며, 책을 쓰는 것도 끝이 없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으며 피곤만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이란?그렇다면 성경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이 세상에 살고 있는 전체 사람들 중 극히 적은 일부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절대다수가 아직도 성경도 한낱 종교의 경전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마저도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겨우 종교인이나 되어 힘든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며 성경은 종교의 경전이 아닙니다.그렇다면 종교한 무엇이며, 종교의 경전이란 어떤 것입니까? 종교는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자기의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는 것이며, 종교의 경전은 衁러한 노력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생활로써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점점 그 문제에 빠지면 빠질수록 양심은 깊은 고뇌 속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양심의 자유를 얻을 수 없고, 양심의 속박과 괴로움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종교는 양심 위에 폭군처럼 군림하는 존재입니다.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가 종교로 변할 때에는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더 사람의 양심을 괴롭힙니다. 어쩌면 기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크게 양심의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밤을 새워가면서, 혹은 새벽마다 눈물로 신께 호소해야만 하는 종교가 어떤 종교입니까? 성경을 종교적으로 읽고 연구해 보면 아마 그만큼 괴로움을 주는 종교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만일 어떤 사람이 기독교를 가지고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양심의 고뇌 속에서 헤매든가, 아니면 철자한 위선자라는 것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종교의 속성입니다. 종교의 본질은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최고의 선에 도달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기 전에는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항상 끊임없는 죄책감으로 인한 양심의 고통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주교의 한 분파에서는 극단적인 신비주의에 빠짐으로써 죄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하기도 하고, 수십 척 높이의 기둥 위에 좌정하여 명상을 하며 금식기도에 열중하기도 합니다. 인도의 어떤 종교에서는 갠지즈강 속에 우글거리는 악어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잡혀 먹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최근에도 회교도들 중에는 폭탄이 실린 트럭을 몰고 원수들에게 돌격하여 폭사하는 것이 마치 순교자의 영광인 양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종교의 의식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어서, 그것으로 남다른 소명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을 신성시한 나머지 양심의 고뇌 없이 일생을 거룩(?)하게 살아간다 해도 그것 또한 위선자의 삶밖에 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종교는, 인간의 양심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거나 인간으로 하여금 위선자가 되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양심의 고통 속에서 시달림을 받는 노예가 되거나, 아니면 위선자의 생활을 해야 하는 두 종류의 생활 가운데 어느 한쪽에 속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이 종교의 경전이라면 역시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므로 사람을 괴롭히거나 위선자로 만들거나 둘 중에 하나를 만드는 역할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이다그러나 다행히도 성경은 그 이상의 사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성경 안에 감추어진 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성경 역시 종교적인 경전의 하나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 생활을 영위해 가는 데 심한 괴로움을 당하는가 하면 위선의 첨단을 걷고 있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물론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알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성경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알지 못하는 데서 자신도 모르게 위선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양심적이 목사 한분은 자신이 위선자라는 죄책감 때문에 목숨을 끊을 뻔한 일까지 있었습니다.그러면, 성경이 사실이란 말이 왜 그리 중요하며, 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경이 사실이라면 지옥도 사실이고 예수의 재림과 심판도 사실이며, 거듭나는 확실한 경험이 없으면 그렇게 찾고 바라는 천국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 모두 사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이 사실이라면 성경대로의 참 신앙을 갖지 않고는 모든 노력과 정성이 허공을 치는 데 불과한 것이며 헛되고 헛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어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하늘에 계신 어버지의 뜻이란 어떤 것일까요? 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깊이 생각해서 이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도 종교적인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율법은 종교적이며 선행에 관한 교훈도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보통 어느 종교든 그 종교가 요구하는 율법을 인간은 다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부족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최선을 다할 따름이며, 또 그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요구하는 율법은 다름니다. 그 율법은 완전한 것을 요구합니다. 성경이 사실이므로 이 율법의 요구도 사실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을 요구하는 것은 일견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율법은 사실에 근거하여 확실한 데에 뿌리를 두고 가르쳐지는 것입니다.
2. 밝혀진 사실
신화로 취급된 사실들그렇다면 어떠한 근거에서 성경이 사실이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어서 하는 말이며 독자들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사실이 성경 속에서 드러납니다.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어떤 교훈으로 꽉 차 있으리라 생각되는 성경에는 그보다 더 과학적이고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성경은 첫줄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는 말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창조에 대한 말씀은 도덕적인 말이라기보다 과학적으로 따져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그런가 하면 성경의 맨 끝에는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며 창조한 세상이 없어지고 끝이 났다는 말로 결말을 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시간적인 개념으로 볼 때 창조에서 시작해서 종말까지의 과정이 기록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한국의 역사책이나 서양의 역사책을 경전이라고 말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종교의 경전에도 역사적인 부분이 전연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인류의 시작, 아니 이 우주의 기원에서부터 인류의 역사를 거쳐 우주가 없어지는 데까지 펼쳐지는 완전한 역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이 사실인지 추상적인 말인지를 가려서 확증이 되기 전에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창조에 대한 사실 여부는 창조에 대한 문제에서 풀어 보기로 하고 먼저 몇 가지 사실을 찾아 보겠습니다.
불가사의한 북극 하늘1981년 10월 13일자 중앙일보에는 '우주에 불가사의한 공간이 있다'라는 제목하에 미국의 3대 천문대에서 관측한 결과를 보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즉, 북두칠성 뒷편인 북극의 상공에는 지름이 3억 광년이나 될 만큼 무한한 공간이 있는데, 그 곳은 별이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주 공간에 현대 과학으로는 해석이 안 되는 '빈 공간'이 있음이 확인돼, 지금까지의 우주 생성 이론이 근본적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관측 결과가 나왔다.미국의 3대 천문대에서 망원경을 사용해 관측한 결과,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거의 우주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거대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는 달리 비어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이 공간은 북두칠성과 목동자리 뒤, 지구에서 약 4억 광년 되는 거리에 있으며 지름이 무려 3억 광년에 이르는 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이 정도의 크기면 약 1천억 개의 별로 구성되는 은하가 2천 개는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그런데 이 공간에는 다른 우주 공간과는 달리 별이 별로 존재치 않아 다른 공간에 비해 밀도가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의 우주발생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약 100억~200억년 전에 대폭발(빅뱅)에 의해서 탄생되었다고 본다. 이 폭발이 있고 나서 약 150만년 후부터 우주 공간에 균일하게 퍼져 있던 별의 무리가 중력의 작용에 의해 은하집단을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그러나 중력에 의해 별들이 한 곳으로 몰려 은하계를 만들더라도 은하계 이외에도 별이 남아 있어 그 밀도는 우주 평균에 비해 3분의 1정도 된다.그렇지만 이번에 새로 발견된 공간은 밀도가 10분의 1밖에 안 되므로 이러한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불가사의한 우주 공간 발견에 참여했던 미국 국립 키트픽 천문대의 폴 세크터 박사는 "우주에 이러한 빈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현재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라고 전제하고, "우주 생성 이론이 근본적으로 흔들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관측에는 키트픽 천문대를 비롯, 애리조나주의 마운트 홉킨즈 천문대, 캘리포니아주의 팰러마 천문대 등이 참가했는데, 3개 천문대에서의 관측 결과가 모두 동일한 것으로 나타났다."(1981. 10. 2 뉴욕 타임즈)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가 많이 흘렀고 과학적으로 천문 관측을 한 지도 이미 오래 되었으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약 3천 수백 년 전에 씌어진 욥기에 이미 이러한 사실이 아주 분명하고도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기 26:7)
이 말은 충분히 추상적이거나 종교적인 기록이 아니며 그 내용 역시 종교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신기하기만 한 기록입니다. 현대 과학에서 겨우 밝혀 낸 사실이 어떻게 성경에는 3 천여 년 전에 그렇게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단 말입니까! 이러한 사실은, 성경이 인간의 두뇌에 의해 추상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것입니다."모든 성경의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디모데후서 3:16)이라고 했으며 성령의 인도 아래 기록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 미치지 못하던 당시에 우주의 창조주만이 알 수 있었던 사실들이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기록자가 북극에 가서 그 상공을 본 것도 아니고 더욱이 천문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기록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는, 성경이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경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유적 발견미국의 유수한 언론지인 유 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지에서는 "성경 기록, 사실에 가깝다"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보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사해 등지에서 고고학자들이 유적을 발굴했는데 불에 탔다는 소돔, 고모라 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여호와의 모습이 그려진 비석도 찾아 내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유와 경위 등이 기록된 문자도 발견해서 해독했다."고고학 연구 조사단이 시나이반도 남단 시내산으로부터 사해와 시리아의 "에블"지역까지 조사한 결과 이상과 같은 것들이 발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락의 바그다드 근처에서는 옛날 바벨탑을 쌓았던 바벨론 유적의 전체적인 윤곽이 발굴됨에 따라 이를 복원하여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려는 계획이 진행 주에 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성서 핸드북에 의하면, 성서와 관련된 수많은 고적들이 발굴되어 영국 발물관이나 기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없어진 하루수년 전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발행되는 이브닝 월드(Evening World)지에서는 '태양이 멈춘 이야기'란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성경의 진리가 컴퓨터에 의하여 입증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 있는 커티스 기계회사 사장이며, 우주계획 고문인 해롤드 힐씨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했다.하나님께서 메릴랜드주의 그린벨트에서 연구하고 있는 우리 회사 우주 관계 과학자들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게 하여 주셨다. 그들은 날마다 컴퓨터 앞에서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까지 소급하여 올라가면서 그간의 태양과 달의궤도 진행을 살폈다. 우리가 그 궤도를 자세히 알지 못하면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위성이 가는 궤도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태양과 달과 그 주변의 혹성들의 궤도 조사가 끝나야만 우리가 발사할 인공위성의 궤도 작성을 하게 된다. 우주 과학자들이 컴퓨터 앞에서 과거 10만 년간의 궤도 조사를 하던 중 그만 기계가 정지하여 버렸다. 컴퓨터의 동작이 정지되고 경고를 의미하는 적신호가 켜졌다. 모든 기사들은 긴장되었다. 그것은 컴퓨터에 제공한 정보에 이상이 있든지, 기계상에 무슨 고장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과학자들은 곧 기계 기사를 불러서 조사를 의뢰하였다. 그러나 기사의 조사결과, 기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우주 과학자들은 컴퓨터가 지시하는 적신호의 원인을 면밀히 살폈다. 결국 판명된 것은 그 궤도 진행상에 꼭 하루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료를 다시 점검하고 입력된 프로그램을 살펴보았으나 어떠한 해답이나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컴퓨터를 작동시켜 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하루가 모자랐다. 과학자들의 머리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며칠 후 교회에 다닌 일이 있는 한 청년이 일어나서, "선생님들, 제가 어렸을 때에 교회에 다니면서 들은 이야기인데, 옛날 여호수아 때에 태양이 하루 동안 정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모두 웃어 넘겼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한 노련한 과학자가, "자 우리가 이대로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성경책을 가져다 자세히 조사하여 그 시대의 궤도를 컴퓨터를 가지고 조사해 봅시다."라고 말했다.그들은 여호수아 10장 12~14절에서,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는 내용을 찾아내었다.여호수아와 아무리 족속들과의 전투는 치열한 것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사에게는 극히 불리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하고 외쳤다. 정말 여호수아의 기원대로 해와 달이 그 자리에 머물러 서서 거의 하루 동안 진행하지 않았다.우주 과학자들은 별 수 없이 잃어버린 하루를 찾기 위해 컴퓨터를 그 당시로 돌려 여호수아 시대의 궤도를 면밀히 조사하게 되었다. 컴퓨터는 23시간 20분 동안 궤도 정지라는 답을 보고하였다. 성경에 '거의 종일토록'이라 했으니 23시간 20분이라는 계산은 정확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40분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다. 만일 40분이라는 시차가 위성 궤도상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면 그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그러면 이 때의 40분도 역시 설명 가능한 것이어야 하는데 아직 그 설명을 할 수 있을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 그 때에 바로 그 청년이 다시 또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성경 어디엔가 태양이 뒤로 물러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우주 과학자들은 곧 성경 열왕기하 20장 8~10절에서 히스기야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냈다. 거기엔 태양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난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10도를 시간으로 계산하면 40분에 해당된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24시간의 행방을 우주 과학자들이 찾아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놀라운 일이다. 성경의 기록을 신화처럼 여기던 과학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것이 아닌가!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지구의 역사에서 하루가 없어졌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속속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필자는 몇 년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워싱톤 지역의 그린벨트 안에 있는 그 커티스 기계회사를 찾아 갔었습니다. 목적은 이 신문기사를 확인하기 위해 해롤드 힐 박사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찾아가서 안내원에게 문의한 결과 사장인 힐 박사는 벌써 오래 전에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갔고, 그런 사실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벌써 오래 전의 일이기에 자기로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지금도 가끔 사람들이 전화나 편지로 문의해 오는 일이 있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회사가 인공위성을 만드는 회사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맨 처음으로 달에 갔다 온 인공위성의 모형을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서 찾아 온 사람들이 타고 사진을 찍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어서 새로 온 안내원이 확실히 알지 못했으나 그런 일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여호수아 10장의 내용을 읽을 때마다 너무도 불가사의했던 일이 현대 첨단 과학에 의해 그 신비가 벗겨졌던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1970년 3월 4일자 조선일보에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탐험가 나바라라는 사람에 의해 방주의 신비가 벗겨졌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나바라씨는 그의 아들과 함께 터키에 있는 아라랏산의 빙하 지대를 정복하고 그곳에 있던 배를 면밀히 조사하여 책으로 발표했던 것입니다. 그 책은 한국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그 속에는 나바라씨가 채취해 낸 배의 파편을 찍은 사진도 실려 있었습니다.그뿐 아니라, 1974년 4월 11일자 일간 스포츠에는 '노아의 방주 아라라트 산정 얼음 속에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었는데, 이번에는 탐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 항공우주국(NASA)의 인공 위성이 찍은 사진 분석에 의해 밝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공 위성은 지상에 있는 탁구공만한 물체도 사진에 담을 수 있다고 하는데, 아아랏산 위에 있는 그 배의 형상이 찍혀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또한 1970년대(날짜 미상)에 발간된 소년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서 큰 배의 화석 발견, 소련과의 국경 근처에 있는 터키의 아라랏산(해발 5,165m) 위에서 거대한 배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길이 140m(성경에 나오는 300규빗과 똑같은 길이)에 15,000톤급 상선과 비교할 만큼 큰 배이 화석이 어째서 백두산의 두 갑절쯤 되는 해발 4,200m의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지 참 괴상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그 해 8월, 미국의 탐험대가 이 산에 올라갔다가 발견한 것인데, 나무조각을 가져다가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배가 만들어진 시대를 밝혀 내고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배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라랏산을 탐험한 사람들은 여러 나라에 많이 있습니다. 아라랏산은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신비의 산이며, 보통 '노아의 산'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6장 13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노아에게 명령하실 때에 배의 재료와 제도 등을 친히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배의 재료는 잣나무로 지정되었는데, 보통 나무는 몇십 년이 못가서 썩지만 잣나무는 3백 년 이상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그 배의 건조 기간이 120년이었으니까 보통 나무로는 건조할 수 없었을 것이며, 현재 아라랏산에 있는 그 배의 나무는 그 산 근처에서는 찾을 수 없는 나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배는 길이가 300규빗(140m), 너비가 50규빗, 높이가 30규빗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배는 과학적으로도 아주 균형잡힌 배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50여 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그와 똑같은 배를 만들어 진수했는데 아주 균형이 잡힌 배였다고 합니다. 아라랏산에서 발견된 배는 이 산 위에 있는 호수에 반쯤 잠겨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썩지 않고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8장 1~4절에는, 바람이 불어 물이 점점 물러갔고 배는 아라랏산 위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다 덮은 물 위에서 배가 빙빙 돌다가 아라랏산 위에 걸렸던 것입니다. 물이 북극과 남극으로 밀려가서 차츰 줄어들게 되고, 점점 더 줄어서 땅이 드러났을 때에 노아와 가족이 배에서 나와 버렸으니 그 배는 다시는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없었을 것이며, 그 후 오늘날까지 산 위헤서 눈속에 묻혀 얼어붙은 재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 배가 오늘날까지 보존되지 않았다면 노아의 홍수설은 거짓말처럼 되고 한낱 신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실존 인물1976년 10월에 발행된 타임(Time)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대학의 파올로 마티에 교수와 지오바니 페티나토 교수는 기원 전 2400년에서 2250년 사이에 존재했던 에블라(또는 엘바) 왕국의 폐허에서 상형 문자가 적혀 있는 납작한 조각의 서판(書板)을 다수 발굴해 냈는데 이는 1947년 사해에서 발굴했던 구약성서의 두루마리와 맞먹는 중요한 발굴이라고 한다.이 서판들 중에는 창세(創世)와 대홍수 등에 대해 기술한 것도 있는데, 그 내용이 구약 성경이나 바벨로니아 문헌에 나오는 것과 일치한다. 그 뿐만 아니라 다윗(David)을 포함하여 소돔과 고모라, 또 창세기에 아브라함의 선조로 나오는 에벨(Eber:창세기 10:21~25)이 자주 언급되고 있어 구약에 나오는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가장 신빙성 있는 증거물이 되고 있다. 또한 학자들은 이 판석에 나타난 '우루살리마(Urusalima)'라고 하는 지명은 예루살렘의 엘바 명임이 분명하다고 보고 있어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들 판석은 '예루살렘'을 언급한 최초의 것이 될 것이다.
이 엘바 왕국이 존재했던 시기는 구약 성서의 아브라함이 존재했던 시기와 일치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유적이 발견된 지역 역시 아브라함의 이동 경로상에 있는 하란에서 하마드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3. 내적인 증거
신의 존재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논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편 14:1)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어리석기 때문이며 다음에는 그 마음이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원치 않으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면 두렵고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없고 자유롭고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죄성입니다. 인간의 속에 그 죄성이 있기 때문에 죄짓는 것을 좋아합니다.죄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며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원수이며 대적자입니다. 그래서 죄를 세상에 불어 넣어서 인간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패하고 선을 미워하는 마귀의 죄가 인간 속에 있으니 하나님이 없어야지 하나님이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이것인 바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식이라도 죄를 저지르고 집에 들어 가려면 부모가 두렵고 싫어집니다. 기웃기웃하면서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당장에는 아버지가 안 계시면 좋겟다고 생각합니다. 죄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애써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선 마음에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어떤 신학자는 신에게서 해방되는 그것이 진정한 해방이며 자유라는 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신에 대한 개념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기 말할 수 없는 속박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18~20)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그 때에 "하나님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음성도 들을 수 없어서 믿지 못했는데 왜 노하십니까?" 라고 변명하거나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알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는 주관적인 것이고 또 하나는 객관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사람 속에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 속성이란 바로 사람의 영혼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어서 동물과 구별이 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린도전서 2:11)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이 그 외롭고 허전하고 슬픈 사정을 자기가 기르고 있는 개에게 얘기한다 해서 그 개가 알아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웃에 있는 같은 처지의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함께 눈물을 흘리며 동정을 느끼게 됩니다.이와 같이 사람 속에는 영이 있어 같은 속성을 가진 자끼리 통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영혼에 있으며,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영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며 짐승처럼 살다가 그냥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한 여대생의 질문제가 잘 아는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어느 날 그 목사님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한 젊은 여성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찾아 왔습니다. 그가 "선생님께 문의할 말이 있어서 찾아 왔는데 시간을 내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청하기에 집안으로 인도하여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머뭇거리고 있는 손님에게 "그래 물어 보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했더니 "선생님, 사람에게 정말 영혼이란 게 있습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면 저는 지금 자살을 하러 가는 길입니다. 저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3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집안이 가난해서 모 신문사 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하던 중에 폐병에 걸렸습니다. 벌써 6개월간 학교엘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몸은 점점 더 쇠약해 가고 이제는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을 바에는 하루라도 빨리 죽어 부모님 고생이나 덜어 드리자는 생각에 지금 혼자 강으로 자살하러 가던 중입니다. 그런데 제 친구들 중에 예수 믿는 애들이 있어 변론을 많이 했지만 저는 신도 영혼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좁은 문'을 읽은 것이 생각나면서 행여나 영혼이 있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기에 마침 이교회 앞을 지나다가 이렇게 찾아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다 듣고 보니 너무도 놀라운 사정이어서 그는 당황했습니다. 행여나 만족한 대답을 해 주지 못해 가서 죽어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한 생명이 죽는 것도 문제이지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헤매는 저 인생에게 사람의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목사로서 어떻게 해야 될지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죽음 직전에 처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며칠 전에 어떤 신자의 가정을 방문한 일이 있었어요. 용무가 끝나고 나오려는데 그 집에서 키우는 주먹만한 개가 날 따라 나오지 않겠어요. 눈까지 덮은 털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고개를 바짝 쳐들고 나를 보는 모양이 귀엽게 느껴졌는데, 글쎄, 고놈이 대문을 막 나서려는 내 발꿈치를 물지 않겠어요. 아야! 하면서 뒤돌아 보니 아무 짓도 하지 않은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되돌아가고 있더군요. 학생, 개에게는 사람에게 있는 뭔가가 빠져 있어요. 사람과 다른 동물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학衁몌에서나 모든 사람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지요. 사고하는 지적인 영역, 사랑하고 정을 느끼는 정적인 영역, 의지의 영역 등 모든 것이 동물과는 크게 차이가 있지요. 양심의 가책은 영혼의 활동입니다. 사람과 금수의 차이는 바로 그것이지요. 금수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이성의 활동이 있고 의지나 감정의 활동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인격이 아닙니까? 그 인격도 영혼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짐승에겐 인격적인 활동이 전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불안전하게나마 인격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자기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믿으려 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학생, 사람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을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입증해 주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확실히 믿게 된다면, 설혹 학생이 내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만류하지 않을 테고 나도 이 자리에서 죽어도 유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없고 육신만 있다면, 우리의 삶의 의미나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이틀을 살면 이틀만큼 고생만 있을 뿐이지요."그의 말을 다 듣고 난 그 여대생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한 후 돌아갔습니다. 그후 몇 번 더 만났습니다.
가슴에 쓴 오늘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어떤 처녀가 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구 아무개의 동생입니다. 우리 언니가 위독한데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그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 갔습니다. 가서 보니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모습이 얼핏 보면 죽은 것 같았습니다."선생님, 이제 죽음이 임박한 것 같아요. 그새 6개월이 되었군요. 선생님을 찾았을 때는 신의 존재나 영혼을 믿지 않았는데 그 후에 선생님의 도움과 설교를 듣는 중에 신의 존재와 영혼의 실재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당에 갈 자신이 없어요." 그 처녀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모든 것을 믿지만 천국에 갈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그 다음 날 또 불러서 찾아 갔더니 이미 기운이 진하여 말문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가 온 줄 알고 손을 위로 치켜 들더니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어 보이고는 가슴으로 가져갔습니다. 가만히 지켜 보니 "나는 말을 할 수는 없어도 들을 수는 있습니다. 나는 이제 죽음…." 그리고 또 무엇이라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죽는다고 하는 줄 알고 "학생, 구원을 받았습니까?" 하고 질문하니 머리를 약간 움직여 그렇다는 표현과 함께 또 손가락을 가슴으로 가져가서 쓰는데 자세히 보니 "오늘" 이라고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푹 놓이면서 처음에 쓴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이제는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하여 한 생명이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약 2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때에는 찬송을 불러달라는 요청에 의하여 찬송가 속에서 하나님 앞으로 갔던 것입니다.사람은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영혼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4. 말씀으로 된 창조
창조적으로 나타난 사실오늘날 우리는 국민학교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진화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으며, 또한 많은 과학자들이 이 세상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생겨 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펼치면, 성경 제일 첫 페이지 첫줄에서부터 성경에 대한 매력을 완전히 잃어 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맨 처음 말씀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진리를 창조하시니라"고 씌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참으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는 그 첫소리가 더 없이 반갑고 귀하며 모든 것의 근본인 것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필자가 일찍이 어느 산골에 있는 작은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에 기독교인 한학자 한 분이 살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그 댁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필자는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한학자의 대답인즉, 자기는 진리를 찾기 위해 유교의 사서삼경을 두루 읽고 공부를 했는데, 모두 참으로 좋은 말들이며 도덕적인 말이기는 했지만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인간이 왜 태어나며, 또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 길이 없어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되는 젊은이가 책 한 권을 가지고 와서 읽어 보라고 주었는데, 중국어 성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한학을 꽤 많이 공부했기 때문에 한문으로 된 성경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는데 첫 장을 펴는 순간 너무 놀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사서삼경을 두루 읽으면서도 이 천지나 인생의 근본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어 궁금했는데, 성경은 맨 처음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명백히 서술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그는 무릎을 치면서 "그러면 그렇지, 바로 이것이로구나. 분명히 이 세상이 창조된 확실한 근거가 있고 시작이 있는 것이지 어찌 우연히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당장에 성경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욥기나 시편을 읽으면서 이 세상의 어떠한 학문에서도 찾아 볼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심오함을 발견했다고 감격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조는 과학이다오늘날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아주 막연하고 추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신론이나 진화론, 또는 기타의 어리석은 말들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재도 이러하거늘 옛날이야 어떠했겠습니까? 만일 수백 년 전에 성경에서 하나님의 과학적인 창조를 설명할 수 있었다면 마르크스의 무신론이나 진화론자인 다윈의 생각이 바꾸어졌을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하나님은 그 실체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음성도 들을 수 없고 접촉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너무도 많습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러한 사실들이 차츰 밝혀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구 공간에 있는 전파라는 것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라디오나 TV는 이 전파를 통해 소리를 듣고 화면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되기 전에는 전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객관적 사실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길은 객관적인 데에도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한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로마서 1:20)
하나님 자체는 눈으로 볼 수 없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 자체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능력과 신성의 결과는 이 창조하신 모든 자연계 안에 나타나 있어서, 우주 만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집을 자세히 관찰하면 건축가의 생각이나 집주인의 취미를 알 수 있고, 자동차, 비행기, TV 등의 기계에는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의 기술이 나타나 있으며 그림이나 음악, 그리고 기타의 예술이나 문학 작품에는 작가의 취미, 사상 등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우주도 하나의 작품으로서 제작자이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편 19:1~4)
라고 시편의 저자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며 그 말씀도 들리지 않으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자연계 속에는 하나님의 영광과 솜씨, 지식과 말씀이 나타나 있으므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사람들은 자연을 그린 그림을 보면서 참으로 잘 그렸다고 감탄하지만, 웅장한 대자연, 알프스나 로키산맥의 절경을 직접 눈으로 본다면 참으로 넋을 잃을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이 자연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창조물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나타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성경과 자연의 세상을 조명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말씀으로 창조우리는 과학자들이 만든 많은 발명품을 사용하면서 살아 가고 있습니다. 냉장고, TV, 가스렌지, 자동차, 비행기, 인공위성, 컴퓨터, 나아가서는 핵무기 등 수없이 많은 과학적인 발명품 속에 싸여서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의 기본 원리는 무엇일까요?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건축물들은 어떻게 해서 지어지며 그 근본 원리는 무엇입니까?그것은 바로 말(=언어)입니다. 이 말은, 음성이란 수단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우리의 머리 속에 '생각(뜻, 계획)'이란 형태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말이란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원리이며 나아가서 법칙인 것입니다.사람이 집을 지으려면 먼저 계획에 따라 그 집의 모양과 내용이 설계되어야 합니다. 또 어떤 물건이라도 그것이 완성품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반드시 먼저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계획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나옵니다. 곧 건축가나 과학자 등의 머리입니다. 그 머리 속에 있던 생각이 설계의 과정에서 종이 위에 청사진으로 나타나고, 그것이 커다란 건물도 되고 비행기도 되고 컴퓨터도 되고 하는 것입니다. '말'이란 단어는 지극히 단순한 한 낱말에 지나지 않지만, 이처럼 모든 인간 활동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말은 사람과 같이 인격이 있는 존재의 전유물이며, 의사, 사상, 취미, 지식 등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따라서 말은 인간 생활에 필연적으로 따라다니게 마련입니다. 아니, 말이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하기보다는 사람이 말에 이끌려 다니면서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말 속에는 계획이 있고 움직이는 힘이 있고 법칙도 있습니다. 법칙이란 말(생각, 뜻) 없이 생길 수 없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발명품은 법칙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이며 건축물도 법칙에 의해서 지어지고 모양과 용도가 결정됩니다. 과학자가 만드는 모든 제품은 자연계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법칙을 이용한 것이며 이 대자연계 안에는 수없이 많은 법칙들이 있습니다. 인공 위성은 지구나 별의 법칙을 알고서 만든 것입니다. 뉴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알았고 디젤은 화로에 올려져 있는 주전자 뚜껑이 움직이는 것에서 증기의 힘을 알아 증기 기관차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끊임없이 인체나 나무나 풀, 물 기타의 모든 것이 연구의 대상이 되어 그 속에 있는 법칙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법칙이 바로 말입니다.그래서 성경에서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3)고 했습니다. 보이는 집과 과학자의 발명품이 보이지 않는 곳, 즉 마음속에 이미 있었던 것처럼 이 대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었던 원리, 설계, 계획, 법칙에 의해서 어느 시점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입니다.또 성경에는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히브리서 1:3)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공중에 날아갈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되도록 법칙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법칙에 고장이 생기면 비행기는 즉시 떨어지고 맙니다. 지구는 47억의 인구를 싣고 시속 10만 킬로의 속도로 자전, 공전을 하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지구가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고 일정한 운동을 계속하는 것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의 말씀은 곧 법칙입니다. 그것은 중력이나 인력 같은 법칙에 잡혀서 우주 공간에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곧 모든 우주는 법칙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법칙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신성인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하늘에 영원히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니다"(시편 119:89~92)
이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분명한 사실이 하나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영원히'란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어떤 집이 생기기 전에 먼저 집 주인이나 건축가의 말(뜻, 계획)이 서 있었다는 뜻입니다.말은 곧 설계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벌써 창조의 의지와 방법, 곧 법칙을 세워 놓으셨다는 뜻입니다. 세밀한 설계와 법칙을 계획해 놓으셨다가 어느 시점에 그것이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을 때 우주가 창조되고,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리고 이어서 주께서 땅을 세우셨다고 했으니 지구는 특히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 있는 피조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역사는 영원 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설계대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다고 한 것은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법칙대로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것을 가리키며, 이를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인 법칙에 순응하는 종이 되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정확한 말입니까!그리고 나서 시편 저자는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독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물질계를 지배하는 자연의 법칙과 정신계를 지배하는 영혼의 법칙, 즉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정신과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양쪽이 다 법도에 어긋나지 않아야 생명을 유지합니다. 육신은 자연 법칙을 따라야 하는데도, 이 법칙을 어기고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병들어 죽고 말 것입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즐거워하는 만큼 참되게 살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이 세상에는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쟁으로, 기아로, 질병으로 수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다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바로 사용되고, 법의 근본인 하나님을 참으로 인정하면 그러한 죽음은 없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모든 인간이 공평하게 잘 살아야 된다는 공산주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그 공산주의에 의해서 인간은 잘 살게 되었는지, 아니면 죽음을 불러 왔는지…. 모든 질서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이 잘 살 줄 알았는데 전세계를 전재의 도가니로,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인간의 길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고난 중에 죽는 길일 따름인 것입니다.성경에는 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그 말씀이 속히 달리는도다 눈을 양털같이 내리시며 서리를 재같이 흩으시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시나니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저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시편 147:15~20)
참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그 명―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뜻,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을 보내시니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이 달린다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결과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겨울에 얼어붙었던 것들이 봄철이 되어 녹아 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법칙, 곧 말씀을 보내셨기 때문이라 했고, 기압 관계로 바람이 불고 구름이 밀려가서 비가 오는 것도 말씀을 보내셔서 되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과학적이며, 또 멋있는 표현입니까?그런데 이뿐만이 아닙니다. 자연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작용하는 것과 같이 인간 역사에도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을 실천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의 시범 민족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택정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에 의해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는, 율법을 받지 않은 나라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 시대까지만 적용되는 말씀이었고, 현재 신약 시대는 전세계의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공개하시고 또 주신 시대입니다.
5. 창조의 과학성
지구의 창조미국의 세크라멘트 유니온 프라이데이지는 1983년 5월 20일자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은 적이 있습니다."별의 탄생을 관측함파사데나(AP)― 한 과학자의 말에 의하면 우주 궤도에 띄워 놓은 망원경에 가스와 먼지로 된 큰 구름 속에서 갓 태어나고 있는 별 두 개가 잡힘으로써 별의 형성 과정에 대한 새로운 단서가 밝혀질 전망이다. "이제는 어떠한 온도와 밀도상의 조건에서 별이나 태양계가 생성되는가 하는 물리학적 과정을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라고 제트 프로펄션 랩(Jet Propulsion Laboratory)에서 적외선 천문위성(IRAS) 연구진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는 찰스 바히만씨가 말했다. 동연구진은 지난 수요일 적외선 천문 위성에 의한 두 원성(原星)의 발견은 신생 별이 구름 껍질을 벗기 전 탐지된 첫 케이스라고 밝혔다. "이들 원성은 광학적인 망원경으로는 그 뒤에 있는 별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름같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적외선 천문 위성으로는 그 구름 속에서 새로 생겨나고 있는 별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라고 바히만씨는 말했다. 둘 다 지구에서 5억 광년 거리에 위치하며, 생긴 지 100만 년이 채 못된 이 원성들은 우리가 속한 은하수 안의 다른 두 곳에 있는 "구름" 속에서 발견되었다. 이 구름들은 각각 바나드5(Barnard5)와 린즈1642(Lynds)로 불린다. 지구가 속해 있는 태양과 태양계는 46억 년쯤 된 것으로 추정된다. 천문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속한 은하계에는 재래의 망원경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원성이 무수히(수천 개) 들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바히만씨는 바나드5 안에만도 원성이 다섯 개는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관찰한 것은 하늘의 1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적외선 천문 위성이 수많은 원성들을 찾아 냄으로써 과학자들은 성운― 이것은 수소와 헬륨의 짙은 가스와 작은 먼지 알갱이들이다. ―이 속에서 엉키기 시작할 때로부터 원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새 별이 탄생하기까지의 별들의 생성 과정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천체들은 태양의 처음 단계와 흡사한 것이어서 과학자들은 이 새 별들 주변에도 태양계가 형성되고 있을 것이라는 이론을 세우고 있다. 이 적외선 천문 위성은 미국, 영국, 네덜란드 합작으로 발사된 지 얼마 안 되었으며(1983년 1월) 과학자들의 결과 분석은 막 시작될 단계이다."
지구가 생성될 때도 처음에는 수소 가스가 뭉쳐져서 기체 덩어리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차츰 자체의 중력과 압력에 의해 폭발하여 불이 붙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외부가 타면서 열은 내부까지 들어갔으므로 지구의 내부에는 상당히 뜨거운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에 의해 모든 물질은 액체로 변해 갔습니다. 따라서 그 변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무거운 물질은 지구의 중심부로 가라앉아 오늘날의 지구의 기초를 형성하게 되었고, 또한 타던 불이 꺼짐에 따라 여러 물질들이 각각 무거운 순서대로 가라앉고 그 중 가장 가벼운 물질은 맨 위로 떠올라 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불은 꺼졌다 해도 내부는 몹시 뜨거운 상태였으므로 지구의 표면은 마치 죽끓듯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식고 굳어 지각을 형성하기까지의 오랜 세월 동안 끊임없이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분출되어 나왔을 것입니다.미국 로키산맥에 있는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는 매일 수천 수만의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 땅속에서부터 분출되는 수증기의 장관을 구경합니다. 해발 3천미터의 고원지대가 그보다 높은 산을 중심으로 둘려 있는데 자동차로 종일 둘러 보아야 할 정도의 넓은 지역 여기저기의 땅속에서 수증기가 솟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넓은 들판이 전부 수증기가 솟아나는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어떤 곳은 물이 끊어 파도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한 시간 남짓 주기적으로 물과 수증기를 70m 높이로 뿜어내는 곳도 있어서 참으로 장관이라고 합니다.그러니 지구가 처음 생성될 때에 지구 표면 전체에서 수증기가 분출되는 장면은 어떠했겠습니까? 세상이 창조될 때의 광경을 창세기 1장 2절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의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얼마나 정확하고 과학적인 말씀입니까? 성경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이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서술해 놓은 것이지 학설이나 교리나 해석서가 아닙니다.만일 어떤 사람이 비행기를 처음 보고 또 타 보았다면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마 "나는 비행기를 타 보았는데 이렇게 저렇게 생겼더라"고 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말할 때는 생긴 그대로, 자기의 눈에 비친 그대로 말할 것입니다. 비록 비행기 내부의 모든 구조를 자세히 알지 못하고 또 학문적으로 연구해 보지 않았어도 '비행기가 이렇게 생겼더라'는 말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땅이 혼돈하고…"란 말은 학설이 아니며 분명히 태초에 지구의 원형이 생성되던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지구 전체가 내부의 열에 의해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자욱하게 수증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혼돈한 상태였겠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표현해 놓은 이 말씀을 사람의 소리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 때는 아직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지 않았고 살 수 있는 가능성도 보이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허며 캄캄했다는 표현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본 입장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미국의 세크라멘트 유니온 프라이데이지에 나온 "Watching as a star is born"이란 말도 별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다는 뜻인데, 역시 객관적으로 멀리서 그 별의 생성 과정을 관측해 보았기 때문에 원성의 상태를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기 전에 지구가 형성되는 과정을 멀리서 지켜본 그 존재는 누구입니까? 창조주 하나님 외에 누가 존재했겠습니까?다음, '공허하며'란 말은 비었다는 의미입니다. 지구가 빈 곳이었다는 것은 생명체, 특히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이사야 45:18)
고 한 것처럼 지구는 사람을 살게 하기 위해서 창조하신 곳인데 아주 오랫동안 공허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깊은 흑암지구의 생성 과정에서 지구의 표면에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암흑 세계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밤이어서가 아니라 빛을 차단하고 있는 장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구름이었습니다. 즉 아직 바다가 있기 전이어서 증기와 구름이 완전히 지구를 빽빽하게 덮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도 비가 오려고 짙은 구름이 끼면 낮이라도 상당히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지금의 바닷물이 전부 구름으로 떠 있을 때이니 지구의 표면이 얼마나 어두웠겠습니까? 그래서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 짧은 한 구절의 성경말씀이 실로 엄청난 사실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다른 구절에서 보충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같이 넘쳐 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하였었노라" (욥기 38:8~11)
이 말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으로 웅대하면서도 정확한 계획하에 자연의 질서가 마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라는 말씀은 구름을 가지고 지구를 완전히 싸서 의복처럼 입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강보는 어린 아이를 싸서 안는 포대기입니다. 이렇게 구름이 의복처럼, 강보처럼 지구를 완전히 두르고 있었으니 지면은 완전히 캄캄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또한 성경 말씀이 결코 추상적으로 꾸며낸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적이고도 과학적인 말씀임을 입증해 준다 하겠습니다. 또한 넘실거리는 큰 물도 바다와 육지의 경계르 넘어서 땅을 덮치지 못하게 한계를 정하여 놓았습니다. 위 아래가 없이 둥근 지구의 표면에 물과 공기가 둘려 있으나 물이 넘치지 못하게 한계가 정해져 있는 것은 참으로 신비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2)고 한 것은, 창조가 법칙에 의한 것이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한 가운데서 창조가 진행되어졌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창세기나 욥기가 현대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씌어진 것이 아니라 3천여 년 전에 씌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 정확성에 다만 놀랄 따름입니다.
창조의 진행이 지구는 전술한 바대로 수소 가스라는 원소, 곧 기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고체의 형태로 진행되어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이 지구가 다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천체에는 지구가 그랬던 것처럼 가스에서 고체에 이르기까지의 형성 과정 중에 있는 별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달을 생각해 봅시다. 1969년 7월 21일에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다녀온 이후 밝혀진 것은 달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달에는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공기도 물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미래의 희망을 달에다 걸고 유토피아적인 아름다운 관광지를 달에 건설할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그곳은 멀리서 바라보면서 "계수나무 찍어다가 초가삼간 집을 짓고 천년 만년 살고지고" 하고 읊조릴 문학의 대상은 될지언정 실질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못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태초의 지구에서처럼 6일이라는 창조의 단계적인 과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 지구에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과정이 있어서 각종 초목과, 새들 바다의 고기, 동물과 사람이 창조되었던 것입니다.만일 우주 어디엔가 사람이나 기타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성경에는 틀림없이 그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것이며, 그 별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니 지구와 서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록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나의 생명체가 삶을 영위해 나가려면 많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20만 종류의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과학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20만 가지의 조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먹고 사는 곡물이나 과일들이 물과 빛과 공기와 기타 여러 가지 조건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에는 다른 별들과는 달리 6일의 창조 과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창조의 최후의 목적인 인간 창조에 필수불가결한 선행 조건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물론 그 6일의 하루하루는 현재와 같은 24시간 단위의 하루가 아닙니다. 현재 땅 속에 묻혀 있는 석탄이나 석유는 그 옛날 사람이 나타나기 이전에 지구를 덮고 있던 울창한 수목들이 지형의 변화에 의해 땅 속에 매몰되어 오랜 세월이 경과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창세기의 6일이 문자 그대로 오늘과 같은 단위의 6일이라면 이는 사실과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재도 남극이나 북극은 1년이 하루로 되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당시의 하루가 오늘날과는 다른 어떤 기간을 의미하는 뜻으로 쓰였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베드로후서 3:8)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시간이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관측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 속에서 여섯 과정을 거치는 동안 창조가 진행되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성경이 참으로 정확한 것은, 그것을 현대 과학에 비추어 보아도 그 순서에 전연 모순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지구상에 먼저 나타난 것이 나중 여섯째 날에 기록되고, 나중 나타난 것이 앞에 기록되어 있다면 이는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가 이루어진 그 여섯 과정의 순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첫째 날지구의 기초가 완성되고 난 다음부터는 다시 여섯 과정의 창조가 계속되는데 그 첫날에는 낮과 밤과 아침과 저녁이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곧 지구의 회전이 시작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지구가 공전함으로써 춘하추동의 4계절이 생기고 자전함으로써 낮과 밤과 아침, 저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태양과의 상관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면으로 받는 곳이 낮이고 비스듬히 받는 곳은 저녁과 아침, 빛을 거의 받지 않는 곳은 밤이 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창세기 1:3~5)
이 말씀은 현재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신 것은, 태양 자체가 그 때에 창조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태양은 지구보다 아주 오래 전에 창조되었습니다. 지구가 구름에 싸여서 깊은 흑암에 갇혀 있는 상태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캄캄했던 곳에 빛이 들어온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는 것도 역시 지금과 마찬가지입니다. 낮이라는 것은 빛인 태양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이 비치는 쪽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침과 저녁은 빛의 경계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지구가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첫째 과정입니다. 그 때의 하루는 오늘의 24시간과 같은 하루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처럼 지구가 그 공전 궤도면에 대하여 지축이 23.5도 기울어진 현상이 일시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할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우리는 창세기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에서, 수증기가 땅에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지구를 완전히 두르고, 지구는 완전히 캄캄해 지는 현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의 지구는 우리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고 기압 관계 등 모든 기상 상태가 참으로 혼돈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거기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 바다의 많은 물은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요? 지구를 빈틈없이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던 구름은 점차 기압골을 형성하며 비가 되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구름은 그대로 떠 있고 낮은 구름은 모두 비가 되어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지면은 온통 물로써 뒤덮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지구는 물로 완전히 둘러싸여 뭍이라고는 한 군데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며, 지구 표면에서 높이 올라간 곳에는 여전히 두터운 구름이 지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상층의 구름과 밑의 물 사이에는 커다란 공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배를 타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먼 바다에 나갔을 때 비가 오려고 하늘이 온통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모습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래는 망망대해이고 하늘위도 역시 물이 가득한 구름이 천막처럼 펼쳐져 있지 않았겠습니까?성경을 읽어 봅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세기 1:6~8)
지구의 표면과 높은 곳에 떠 있는 구름 사이에 생긴 빈 공간을 궁창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물은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어진 것입니다.
셋째 날가끔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영화를 보면, 용암이 끓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와이의 힐로란 곳에 가면 자주 폭발하는 화산 때문에 끓어 오른 용암이 수십 리까지 흘러 내려가다가 굳어 있고, 그 위로 아스팔트 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높은 산에서 바다까지 이르는 넓은 들판이 모두 시커먼 용암으로 덮여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서부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 그랜드 캐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이온 팍, 곧 '시온의 공원'이라고 불리는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그 국립공원은 우뚝우뚝 솟은 산봉우리들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산들을 보면 참으로 신비스럽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육지가 본래 물 속에 잠겨 있다가 솟아 올라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산들이 모두 묽게 반죽해 놓은 떡덩이가 흘러 내리다가 굳은 것처럼 층이 졌는데, 그 중 어떤 것은 지금도 흘러 내리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땅 속에서 솟아 오른 용암이 흘러 내리다가 굳어서 그런 모양이 된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보는 높은 산맥, 넓은 들판들도 모두 그렇게 해서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차츰 현재와 같은 육지의 모습으로 변해 온 것입니다. 성경에는 셋째 날에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창세기 1:9~10)
뭍을 땅이라 했는데, "뭍이 드러나라"고 한 표현을 보면 물 속에서 솟아 오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용암이 끓어올라도 대륙이 될 만큼 솟아 올랐으니 물은 태산 같은 큰 파도로 소용돌이 치면서 한 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라고 한 것입니다. 만을 그때 누가 공중에서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면 아마 그 장엄한 모습에 할 말을 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의 지구는 아직도 그 상층에 두꺼운 구름층이 덮여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햇빛이 모두 와 닿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들은 직사광선을 받지 않고 살았고, 또 기후도 현재와는 다른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 장수할 수 있어습니다. 심지어 969세까지도 살았습니다. 현재도 태양에서 발산되는 자외선을 사람이 강하게 받으면 살갗이 타서 새까맣게 되고 오래 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오존층이 자외선을 일부 막아 주기 때문에 동식물의 생존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오존층이 파괴된다면 자연계도 파괴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지구를 덮고 있던 두꺼운 구름층이 비가 되어 내린 것이 노아의 홍수입니다. 이 홍수 후부터 인간의 수명은 급격히 짧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의 둘째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여섯 날 동안의 창조 과정을 모두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3일까지의 설명만으로도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밀한 계획하에 법칙으로 창조되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 5백여 년 전에 기록된 창조설이지만 그 순서나 사실이 너무도 정확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수(數)는 만물의 원리과학자 피타고라스는 일찍이 '수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의 원리'라고 했습니다. 과학의 기본은 수학입니다. 수는 사무실에 앉아서 주판알을 굴리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건축가에게나 자연 과학자, 천문학자에게도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학문이며 원칙입니다. 이 수를 무시하고 과학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과학자들은 태양이나 지구, 별들의 크기, 무게, 거리 등을 수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지구의 무게는 60만조 톤,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1억 5천만 킬로미터, 달과 지구의 거리는 38만 킬로미터, 태양은 지구의 10만 배 등등으로.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욥기 38:4~5)
우리가 사는 지구의 기초는 오랜 시일에 걸쳐서 견고히 형성된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아직 인간은 태어나지 않았었습니다. 태어나기 수억 년 전일 것입니다. 위와 같은 말씀은 사람으로서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입니다. '내가'라는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누가 도량을 정하였는지'라는 말도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말입니다. 여기서 도량이라는 말은 태양이나 지구, 또는 별, 달 등의 크기, 무게, 상호간의 거리 등에 대한 설계를 의미합니다. 도량형이라는 말은 자, 저울, 되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깊이 생각해 보면 도량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태양의 크기나, 지구와 달의 크기는 아무렇게나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상호간의 거리 또한 현재의 거리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태양의 현재의 위치, 곧 지구로부터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자리에 있으면서, 그 크기가 조금이라도 더 컸다면 지구에는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지구의 온도가 너무 높게 되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지구의 표면이 전체적으로 1미터씩 높았더라면 역시 사람이 살 터전이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의 양이 너무 많아서,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땅을 물속에서 드러나게 할 수 없었을 터이니까 말입니다. 만일 달의 크기가 현재보다 배가 컸더라면 또한 지상에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인력이 너무 강해서 물을 높이 끌어 올렸다 놓았다 하면 온 지면의 물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것이고, 계속해서 폭풍이 불어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와 달의 거리는 약 38만 킬로미터인데, 그 거리가 지금보다 가깝거나 멀어도 안됩니다. 달은 지구를 돌면서 그 인력의 힘으로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에 균형을 이루게 하고 있는데, 만일 그 거리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멀거나 가까우면 이 균형이 깨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인데―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평균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 그 도량이 정확한 계획에 의하여 정해지지 않고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면 현재의 거리에서 2배로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얼음덩이가 되어 사람이 전연 살 수 없었을 것이고, 반대로 가까워진다면 언제나 섭씨 수백 도를 오르내려 너무 뜨거워 역시 사람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밖에 다른 모든 별들과의 관계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 이론이 성립됩니다. 현재도 목성은 지구보다 크기 때문에 전체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고 하며 수성은 태양에서 너무 가깝고 자전하지 않기 때문에 태양빛을 받는 부분은 수백 도로 뜨겁고 빛을 받지 않는 뒷면은 수백도로 차다고 합니다.지구는 공전 궤도에 대하여 23.5도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만일 지축이 이처럼 기울어져 있지 않다면 4계절은 없을 것이고, 적도 부근의 물은 계속 증발되며, 북극이나 남극에는 계속 눈이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음 대륙이 점점 커지고 바다는 말라 버릴 것이며, 지구는 남북의 얼음덩이의 무게 때문에 점점 평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구의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태양이 북반구와 남반구를 번갈아 비치게 되며, 또 이를 인하여 양극의 얼음이 더 얼지 못하고 바닷물의 양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우주의 창조 원리는 면밀히 짜여진 계획에 의하여 만들어진 정밀한 기계와 같습니다. 현재와 같은 지구의 상태에서 그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우주의 질서는 파괴되어 지상에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됩니다. 이사야 45장 18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창조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6. 영적인 존재 ― 인간
인간의 창조우주의 창조도 신비하지만 인간의 창조는 더욱 신비합니다. 사람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사는 자'란 뜻입니다. 그만큼 사람은 신비하게 지어졌습니다. 사람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손과 손가락에서 어떤 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손이 발과 다른 점은, 손가락이 기록, 엄지 손가락과 다른 손가락 4개가 구별되어 크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손은 물건을 만지거나 잡는 데 그 목적이 있고, 발은 땅을 밟고 다니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발가락은 엄지와 다음 발가락 사이가 멀리 떨어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에 손가락이 젓가락처럼 뻣뻣하면 구부러지지 않으니 무엇을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어떤 뜻과 목적을 두고 창조하신 것이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의 두뇌는 짐승과는 달리 그 세포가 훨씬 더 많고 복잡해서 생각하고 연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동물 중에 말하는 것은 사람뿐입니다.그 외에 신경조직, 혈관, 오장육부 등을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롭기만 합니다. 성경에서는 "가슴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마음 속의 총명은 누가 준 것이냐" (욥기 38:36)라고 했습니다. 인간 제 스스로가 지혜나 총명을 만들어 가진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라고 하여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처럼 지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백성 중 우준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꼬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열방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하지 아니하시랴" (시편 94:8~10)라고 했습니다.사람의 지혜, 인격, 그리고 육체는 다른 모든 짐승과는 달리 하나님을 상대해서 진리를 탐구하고 깨닫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잠언 20:27)고 했습니다. 짐승들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다. 사람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영혼이 있어서 죄를 지으면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알게 되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등불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양심의 활동에 의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살피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독특하게 지어졌습니다.
창조의 목적어떤 사람이 집을 짓는다면 짓는 목적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든지 만든다면 만드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길을 가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는 목적지가 있습니다. 목적 없이 길을 가면 힘이 없게 되고 생기도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십중팔구 그는 방황하는 사람일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기는 하셨으나 이 세상에 대해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그냥 버려 두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결국 실패하신 것이며 실패하신 하나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결국 그러한 사상 속에는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성경에서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도서 3:1~11)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에 부응한 기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향해서 가는 데는 때가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도 공부하는 때가 있는데, 만일 박사가 될 목적을 세웠다면 그 목적은 아무 때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분명한 목적하에 창조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을 향해서 계속적으로 나아가는 역사의 과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행됩니다. 그러므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역사적 과정 중에 창조주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과정을 거쳐서 도달하는 영원계에 하나님이 설정하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그래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한 후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한 것입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시간의 과정 속에서는 인생의 어떤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계에는 완전한 해답이 있습니다.
행복이란?인생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물질에서 행복을 찾기도 합니다. 마릴린 몬로는 일찍이 말하기를 '내게는 돈도 있고 인기도 있고 미모도 있는데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쓸쓸한가'라고 했다는데 결국 그는 자살로써 인생을 끝내고 말았습니다. 일찍이 세계 정복의 야망을 품고 권력을 휘둘렀던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나 시저, 나폴레옹, 징기스칸, 히틀러 등은 세계 정복의 꿈을 실현하진 못했지만 설사, 그들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행복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인간에게는 순간적이지만 행복한 시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입니까? 아마 젊은 남녀가 서로 손을 잡고 공원이나 거리를 거니는 그 시절일 것입니다. 서로가 열렬히 사랑하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할 때입니다. 가령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죽고 한 사람의 남자만 남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모든 것이 다 그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자, 그는 과연 행복할까요? 금은 보석에 둘러 싸여 황홀함을 맛보고 낮에도 넓은 천지를 내 집처럼 활보하겠지만 지켜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는 어디까지나 혼자일 뿐입니다.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다정히 손에 손을 맞잡고 무엇인가 속삭이면서 나무 사이를 거니는 젊은 청춘과 비교해 볼 때 어느 쪽이 더 행복하겠습니까? 이 때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그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의 여성일 것입니다.일찍이 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의 남성이 혼자 있었습니다. 그는 아담이란 사람이었는데, 그의 앞에는 마냥 평화롭고 아름다운 에덴이라는 낙원이 있었습니다. 새들은 노래하고 꽃들은 향기롭고 많은 동물들이 서로 사이좋게 노니는 그런 낙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도 아담을 행복하게 해 주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곧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짝이 없었습니다.아마 오늘날 누구라도 세상에 혼자 남게 되어 무엇이나 만들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사랑의 짝을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갈비뼈를 뽑아서 하와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아담은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면서 기뻐하고 만족해 했습니다.
"…아담이 돕는 베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0~23)
왜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을까요? 과학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피는 뼈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하며 심장에서 가장 가깝고 또 여러 개로 되어 있는 갈비뼈에서 가장 신선한 피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성경에서는 "생명은 피에 있다" (레위기 17:11)고 했습니다. 심장이 있는 가슴은 사랑을 상징합니다. 여자를 발가락으로 만들었다면 이는 천대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두 골을 깎아 만들었다면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슴에서 뽑은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포옹도 가슴으로 하고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도 가슴으로 안고 먹입니다. 가슴은 아이가 어머니의 눈을 마주하고 서로 사귈 수 있는 사랑의 위치로, 여기서 아이는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행복은 사랑 속에 있습니다. 성경은 연애 소설이 아니지만 실제로 사랑의 사상과 사랑의 사실, 사랑의 근본 원리가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 4:8)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곧 돕는 베필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는 때에 더욱 행복을 느낍니다.그러나 짐승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모릅니다. 사랑을 의식하지 모사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계도 사랑의 원리로 창조되어 있습니다. 짐승도 전부 암컷 수컷이 있어 번식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법칙이며, 그들 자체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의 짝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입니다.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동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생명체가 동작이 전혀 없다는 것은 틀림없이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가? 생명을 가진 상대방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물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생수는 흐르는 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물을 흘러가지 못하게 막아 버리면 그 물은 웅덩이에 고이게 되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썩어 죽은 물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웅덩이에는 이끼가 끼고 고기도 살 수 없게 됩니다. 물이 흐를 때에는 살았으나 흐리지 않으니까 죽어 버리게 되지요. 이처럼 생명이란 흐르는 것입니다.사람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유물론자들은 유물론적으로 해석하여 사람이라는 것은 물질의 결합체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물질적 경제적 생산 방법이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유물사관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또 인간은 물질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된다고 공산주의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 사회를 개혁하고 또한 부를 균등하게 분배하게 하면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 즉 유토피아적인 세계가 온다고 떠들어 댑니다.그러나 인간은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배 부른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랑의 짝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도 생명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의 흐름이 그렇듯이, 내 생명도 흘러나가야 할 곳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써 생명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사람은 만물의 영장으로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외모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두고 한 말입니다. 양심과 이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을 감지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것은 사람을 당신의 사랑의 짝으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도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그 짝을 지어 주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만큼 사람도 서로 사랑의 짝이 있을 때에 행복과 만족을 느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랑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순간적인 행복, 순간적인 만족이 있을 뿐입니다. 연애 시절이나 갓 결혼한 시절에는 참으로 행복하다가도 한 쪽이 변절을 하거나 어떤 방해가 있게 되면 금방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심하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생 자체, 세상 자체가 영원하지도 완전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 또한 완전하고 영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불완전하고 부조리한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과정집을 지으려면 짓는 과정이 필요하고, 무슨 물건이나 기계를 만드는 것도 반드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목적도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완전한 사랑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지 아직 완성된 세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영원한 사랑의 세계, 완전한 이상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짝은 사람이며 이 세상은 그 분의 작업장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람의 일시적인 거처로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계시록 21장 1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현재 세상은 없어지고 새 세상이 온다고 되어 있고, 그 새 세상에 만들어진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바로 완전한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진 모습입니다. 또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병도 없는 세상이리고 했으므로 그 세상은 전쟁도 굶주림도 전혀 없는 완전한 이상 세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이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이 영원한 사랑의 짝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해서 영적인 존재로 지었다고는 해도 육신으로 태어난 인간이 육신이 아니신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짝이 될 수는없으므로 다시 한번 영적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주어져 있어서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상대가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의 사랑도 사람이 자유 의지에 의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두 가지 법칙앞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법칙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 동물들과 사람의 육신까지도 모두 법칙에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 법칙 안에서 탄생하고 살아갑니다. 밥 먹고 배설하고 마시고 쉬는 모든 생활이 다 자연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만으로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맺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라서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으로 맺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영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이 영의 법칙이 곧 진리이며 그것은 영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자연 법칙으로 세상과 인간의 육체를 창조하시고 다음에 영의 법칙으로 인간을 구원하심으로써 사람을 완전한 사랑의 짝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10)
진리의 사랑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인간에 계시하셨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요한1서 4:8~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에게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사랑도 알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 사랑을 알고 받아들이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짝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베드로전서 1:22)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거짓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참 사랑이 가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진리는 바로 사랑의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입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5)
사랑의 진리인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완전히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짝이 되며, 영원한 사랑의 세상에서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예수님은 어느 날 당신을 찾아 온 헬라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이 말씀은 자연의 법칙으로써 영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그래도 있으면 언제까지나 한 알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땅 속에 들어가서 껍질이 죽으면, 싹이 올라와서 잎이 나고 줄기가 자라, 죽어 없어진 씨앗과 똑같은 수많은 밀알을 맺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하나의 생명의 씨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가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그 육신을 죽여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지 사흘만에 새 생명으로 부활했을 때 그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참으로 믿으면 부활의 생명이 들어와서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의 씨앗으로 보내어 하나님의 많은 아들을 낳게 하는 것이 역사의 근본적인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 됩니다. 이 세상 역사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들들을 낳으시는 과정이라는 데에 있습니다.그런데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친구를 따라 예배당엘 가면 먼저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앞에서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하면서 기도하면, 자신도 그것을 배워서 몇 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참 아들이 아니라 의붓아들입니다.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 갈 수도 없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속죄의 진리가 심령에 이루어진 후 부활의 생명이 와서 영을 다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처음 오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의 씨로서 죽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많은 열매인 아들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를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요한복음 6장 40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역사를 경영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은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듭나서 영생을 얻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만드신 것과 낳으신 것을 구별하십니다. 에덴의 아담은 죄가 없었으나 만들어진 피조물이었지 낳은 아들이 아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담도 다시 나야 했기에 생명과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생명과를 먹기 전에 먼저 범죄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그러한 아담의 후예들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생명과를 먹고 다시 살아나야 할 존재들인 것입니다. 생명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야고보서 1:18)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 완전히 형성되면 현재 인간이 사는 세상은 끝이 나고 영원한 사랑의 세상이 이룩되는 것인데, 그 곳에서 사랑의 짝들과 함께 영원히 사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7. 끝날의 징조
끝날이 올 것인가?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그 시작된 때가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나 자연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역사를 수백억 년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생성은 45억 년, 그리고 인간의 출현은 25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가 얼마나 되었든간에 그 시작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그 끝이 있으리라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모두가 끝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주와 자연계, 인간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그 멸망과 새 세상 창조까지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 역사는 어떤 경륜에 의한 하나의 과정이며, 그것은 자연계의 붕괴와 더불어 그 종말을 맞이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사람의 육신은 계속 늙어 갑니다. 태양이나 지구도 늙고 있습니다. 모든 물체는 다 늙어가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태양이 무엇입니까? 타고 있는 불덩이입니다. 타고 있는 것이 어떻게 영원히 탈 수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꺼져서 식을 날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학자는 연쇄적으로 흑점이 폭발하여 계속 탈 것이라고 하지만, 흑점이 폭발한다는 것은 자체가 감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학자의 말을 빌면, 1초 동안에 3천만 파운드의 열량이 소모된다고 합니다. 태양의 흑점 폭발은 지구상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태양 자체의 변화와 그 수명의 한계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미 해양 환경청은 장차 태양 흑점 폭발로 인하여 무선 통신에서부터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고 합니다.(1980. 2. 27. 중앙일보) 그것은 11년마다 주기적으로 오는 것인데, 이번에는 금세기 최대의 것이라고 합니다. 인류는 지구에만 의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태양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태양도 자꾸 늙어 가고 있다니 우리 인류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그뿐 아니라 지구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끔 밤하늘에 흐르는 아름다운 별똥을 바라보며 할머니가 들려 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그 별똥이란, 깨어진 별의 조각들이 우주 공간을 떠돌아 다니다가 지구의 인력에 의하여 대기권으로 들어오면서 공기와 마찰을 일으켜 타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때는 지구보다 큰 별이 폭발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 조각들은 우주 공간에 떠 있다가 인공위성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대개의 경우 그것들은 대기권에서 다 타 버리고 마는데, 미처 다 타지 못한 것은 운석으로 땅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 집채만한 크기의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그렇다면 지구도 하나의 별인데, 영원히 존재할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지구의 내부에는 맨틀 대류 지층이 있는데, 모든 물체가 지열에 의해 녹아 있어서 마치 용광로 속에 들어간 쇠붙이가 쇳물이 되어 끓는 것처럼 끓고 있는 곳입니다. 그 힘은 참으로 대단해서 대륙을 움직이는데,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 힘으로 육지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대륙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두 함께 붙어 있던 대륙들이 차츰 갈라지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듯이 호주 대륙과 인도 대륙을 맞춰보면 서로 꼭 들어 맞습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과 아프리카에 맞춰보면 꼭 맞는 것입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은 1년에 5cm씩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느날 맨틀 대류의 운동에 의하여 지구가 폭발할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지구는 완전 무결한 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화산 폭발시 용암이 분출되는 것은 지구 내부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습니다.자연계는 이 시간에는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이며,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 변화의 양상이 인간의 의식에 감지되지 않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는 인구 팽창, 무기 경쟁, 계속적인 발전의 추구로 말미암아 자원 고갈, 자연 파괴를 가속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들은 지구의 소멸이 멀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1975. 11. 27. 중앙일보 참조)
예수님과의 대화어느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의 제자들이 웅장한 성전을 보고 감탄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성전은, 솔로몬 당시에는 8년이나 걸려서 지은 것이었고, 바벨론 포로 이후 헤롯왕 때 새로 지을 때에는 46년이나 걸려서 완성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 성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웅장했는지 보는 이마다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 말을 들으시고 아주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고.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장에는 물어 보지 못하고 성전에서 1500미터쯤 되는 감람산에 올라갔을 때에 조용히 질문을 했습니다."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3)
그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태복음 24:7~8)
이는 예수께서 2천년 전에 하신 말씀인데 과연 그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생각해 보면 알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 보면, 전세계적으로 자기 민족간에 둘로 갈라져서 서로 싸운 시절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모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로 싸우고 죽이고 피를 흘리고 있는 나라만 하더라도 세계의 거의 반이 되어 가고 있으며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1차 대전 이후부터는 세계적인 규모의 전쟁과 국가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구 폭발세계의 인구 증가 추세에 대한 유엔 인구 통계 보고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서기 600년에 4억이었는데, 그 후 천년이 지난 서기 1600년에는 6억이 증가하여 10억이 되었으며, 다시 3백년이 지난 1900년경에는 10억이 불어서 20억이 되었고 50년이 지난 1950년에는 다시 10억이 불어서 30억, 그리고 20년이 지난 1970년대에는 또 다시 10억이 불어서 40억이 되었다고 합니다.현재는 인구 억제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서 다소의 실효를 거두고 있다고는 하나, 세계 인구는 해마다 거의 한국 인구의 배가 되는 8천만 명씩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족 계획을 강력히 추진한다 해도 미개한 세계나 종교를 강력히 신봉하는 세계에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고, 아들 딸 가리지 말고 둘만 낳아서 잘 기르자고 해도, 사람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어, 인구 증가율을 감소시키기란 사실상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책자는, 지구는 60억 이상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식량 문제인구 팽창은 자연히 식량 문제를 불러 오게 됩니다. 인구가 증가하게 되면 이에 따라 경작할 토지도 증가해 가야 할 터인데, 그와는 반대로 경작할 토지가 줄어 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1977년 9월 12일자 중앙일보는 제 1차 국제 사막회의 보고 내용을 보도하면서, '메마른 지구, 사막이 늘고 있다'는 제목 아래, 지난 50년 동안 남미주의 절반에 해당하는 땅이 황폐화되었다고 말하고, 20년 후에는 온 인류가 식량난에 허덕이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현재 지구의 적도 이남에서는 8억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는데, 그 중 5세 미만의 어린 아이가 연평균 3천만 명씩이나 아사하고 있다는 것이 현 실정입니다. 기상 학자들은 멀지 않아 온 세계에 대흉년이 온다고 예상하고 있습니다.현재 세계 식량 비축 실정은 참으로 한심하다고 합니다. 유럽만이 겨우 자급 자족할 정도이고, 그밖의 세계 각국은 식량이 모자라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모두 아시다시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서 나오는 잉여 농산물로 이를 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근동 지방은 식량 생산이 거의 없고,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등도 이제는 식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한국도 과학적인 영농 방법에 의한 다수확을 시도하고 있으나, 일년 농사로는 식량이 부족하여 해마다 미국산 밀과 쌀을 수백만 섬씩 들여 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실정인 것입니다. 만일 미국같은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식량 수출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아마 세계 각국에서는 아사자가 대량으로 속출할 것입니다.
지진예수님께서는 끝날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지진을 언급하셨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구는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으로 인해서 지진과 화산 폭발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의 마지막이 가까워 오면 지진과 화산 폭발은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근래 세계 도처에서 커다란 지진과 하藁산 폭발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미국 헬렌즈산의 폭발은 기후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였으며, 이태리의 시실리섬이 폭발했을 때는 거의 1개월 가량 용암이 흘러내려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해야 했습니다. 또 중국의 당산 지진 때에는 약 백만 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일본, 터키, 남미의 칠레, 미국 등 각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지진 현상은 지구의 내부에 큰 변동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계시록에는 이 세상 끝에 전쟁과 큰 지진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요한계시록 6:12)
화산 폭발이나 지진이 일어나면 먼지가 하늘을 덮어 해가 가리워지고 달이 피같이 보이는 현상이 생길 것입니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요한계시록 16:18~19)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땅이 깨어지고 깨어지며 땅이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고 흔들리며 땅이 취한 자같이 비틀비틀 하여…" (이사야 24:18~19)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히브리서 1:10~12)
성경은 이미 2천년 전에 지구의 마지막 운명을 분명히 내다보면서 기록된 것입니다.
핵전쟁으로 본 지구의 종말1983년 11월에 미국에서는 '그 날 이후(The Day after)'라는 TV영화가 방영되어 전 미국 인구의 반 이상이 시청했다고 하는 데, 그때 상당히 큰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날'이란 핵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핵전이 있은 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식량이 없어 헤메는 모습과 방사능에 노출되어 온 몸이 상해 서서히 죽어가는 광경을 본 미국과 캐나다의 시민들간에 핵전쟁이 나면 살아남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여론이 일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에서는 국무장관이 TV에 나와 담화를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 영화의 끝 장면에는, '이것은 단지 영화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더 참혹하고 비참할 수도 있다'는 해설이 덧붙여 있었다고 합니다.또 영화 제작처인 캔사스시 부근에 사는 어떤 분께 들은 얘기로는, 그 영화가 상영된 직후 시민들의 데모가 일어났으며 보따리를 싸가지고 이사 가는 사람이 생겼고 집이나 땅 값이 하락했다고 합니다. 전에는 막연하게 생각되었던 문제들이 어느새 구체적으로, 그리고 피부로 느낄 만큼 가까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입니다.핵전쟁이 일어나면 7억 이상이 즉사하고 차츰 죽어가는 숫자 또한 거기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불을 피우고 횃불을 둘러 띤 자여 너희가 다 너희의 불꽃 가운데로 들어가며 너희의 피운 횃불 가운데로 들어갈지어다…" (이사야 50:11)
이는 약 2천 6백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때 벌써 이 세상 인간들이 자신이 들어가 죽을 불을 피우게 되고, 그 불에 의해서 타 죽게 된다는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이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 살이 썩으며 그 눈이 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스가랴 14:12)
이런 현상은 핵전이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역시 오늘날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6~7)
옛날 노아 시대에는 세상이 홍수로 멸망했으나 이제는 불로 심판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말씀이 사실로 입증되고, 또 입증되어 가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8. 선악의 개념으로 본 성경의 사실
악은 어디에서 오는가이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선악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실제로 악이 팽만한 세상임에는 틀림이 없고 누구도 현재의 세상이 죄악에 지배되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선은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지 참으로 알고 바른 정의를 내리기는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또, 선과 악의 시작은 어디이며 무엇으로부터 연유했는지 그것을 알고 가르치는 철학이나 종교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겨우 현상을 가지고 이원론을 주장하여 선의 신과 악의 신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신학적인 이론을 내놓는 것이 고작입니다. 모든 철학이나 종교는 다 선악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은 상을 받고 악은 벌을 받는다고 하는 권선징악적 가치 기준이 생겨난 것입니다. 유교에서도 삼강오륜이 있어서 인간이 당연히 지켜야 할 윤리적 규범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한시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봄 동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날로 자라고 있고,
악을 행하는 자는 칼을 가는 숫돌 같아서 그 닳아 없어지는 것이 보이지 않으나 날로 닳아 없어져 간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며 무엇이 그렇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원인을 밝힐 수 없는 것입니다.불교에서는 사람이 살다가 죽어서 다시 환생할 때에 전생의 행위에 따라 곤충이나 소나 돼지나 개 등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윤회설) 각 사람이 전생에서 행했던 선악의 차이에 따라 다시 태어나는 데도 구별이 있는 것입니다. 또 완전히 해탈을 하면 극락에 가는데, 그것은 완전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막연한 것으로, 태어나게 하는 힘이 무엇이며 선과 악을 판결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극락과 선의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밝혀 주지 않습니다. 기타 모든 종교가 전부 이런 식의 종교적인 가르침만을 베풀 뿐입니다.그러나 성경에는 일찍부터 이러한 종교나 철학의 이론가들이 인생의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실례를 들어 설명한 드라마가 있습니다.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참으로 의롭고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수많은 소 떼와 양 떼가 있었고 자녀들도 많았으며, 가난한 사람이나 길손에게도 후히 대했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도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재산과 자녀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문둥병과 같은 모진 병에 걸려서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그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는데, 소식을 듣고 그를 위로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욥이 필시 무엇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터이니 죄를 회개하면 쾌차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을 시작하여 장시간의 변론이 벌어집니다. 그 때마다 욥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반박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변혼이 무위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한 젊은 사람이 곁에서 새로운 충고를 하여 이야기를 결론을 보게 됩니다.이상이 욥기의 내용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을 위로하러 와서 위로는커녕점점 더 욥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욥기를 읽으면서도 그 내용이 무엇이며 세 친구는 무엇을 뜻하는지, 또 욥의 존재는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욥기의 세 친구는 바로 이 세상의 철학자, 종교가, 도덕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욥은 인류의 전체 대표, 곧 환난과 곤고함, 질병과 실의에 차서 헤매는 인생의 대표자입니다. 인생이 어떻고 삶이 어떻고 하여 장황하게 늘어 놓으나, 세 친구가 무슨 말을 해도 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의 생각으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러면 그 세 친구는 왜 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까? 거기엔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욥이 그렇게 된 데에는 분명한 원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본 일도 들은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욥 자신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욥이 생각해 볼 때 그에게는 기억에 남을 만한 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책망과 이론에 대해 계속 반박하며 "나는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했으나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통은 너무도 심합니다. 질병, 죽음, 싸움, 굶주림, 기타 수많은 걱정과 근심이 온 인생과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수없이 행해져 왔고, 또 각자 제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답이나 진리는 없는 것입니다. 인생은 제 스스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욥이 그렇게 된 이유는 욥기 첫부분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아들들이(천사를 비유로 말한 것임) 어떤 회의를 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모였는데, 거기에 사탄(마귀의 본체)도 끼어 들었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기 1:6~12)
욥의 그 참혹한 모습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사탄이 주는 시험이었습니다. 욥도 세 친구도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겠습니까?욥의 이야기는 인생의 고뇌, 환난 등의 근본 원인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인생을 논하는 철학이나 어떤 사상이나 종교의 헛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생을 안다고 입을 연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인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힐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본 근본그러나 성경은 그 근본적인 원인, 즉 인간이 죄를 지은 과정이라든가 인간이 고통을 당하게 된 실상, 죽음이 온 이유 등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타락설을 꾸며 낸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 병고, 기타 여러 가지 고통의 원인이 사탄에게서 온 것임을 설명해 주고 있으나 사람들은 사탄을 시인하지 않기 때문에 사탄에게서 해방되려고 하지 않는 것이며 사탄과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을 알게 되면 사탄과 함께 운명을 같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사탄이란?사탄은 인간의 역사가 있기 전, 즉 인간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부리는 천사 루시퍼였습니다. 그가 창조되었을 때는 아직 이 세상이 있기 전으로, 천사들에게는 군대의 조직과 같이 대장이 있고 졸개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미가엘이니 가브리엘이니 하는 천사장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로보아 각기 직무가 따로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의 루시퍼라는 천사장도 군대의 대장으로서 군졸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가진 힘이 대단한 것같이 느껴져 하나님처럼 자기도 최고의 위치에서 숭배를 받을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위치에 오르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군졸과 함께 쫓겨나서 천사의 영광스러운 직무를 행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사탄입니다.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너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너를 자세히 살펴 보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키며 세계를 황무케 하며 성읍을 파괴하며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않던 자가 아니뇨 하리로다" (이사야 14:12~17)
이 말은 바벨론왕에 대한 말이지만 바벨론왕은 마귀의 그림자로서 사탄의 대행자였습니다.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에스겔 28:12~15)
여기 보면, 두로왕이 에덴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사탄의 그림자로서, 사탄은 에덴에 있던 아담과 그 아내를 꾀어 죄를 짓게 하고 세상의 통치권을 빼앗아 간 존재입니다. 그로 인해 인간의 타락의 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입니다.(두로왕이 에덴에 있었다는 것은 레바논 자리에 에덴 동산이 있었기 때문임. 두로는 레바논의 도시임)사탄은 그 큰 영광과 힘으로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하다가 지상으로 쫓겨난 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서 하나님께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가 뭇 별 위와 가장 높은 구름 위에,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한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창조 전부터 있던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했을 때 그 세상을 지배하고 높이 되고 영광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까지는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다가 창조된 것을 보고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악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해 들어온 죄하나님께서는 천지 창조의 일을 끝낸 후 제 6일째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천사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히브리서 2:9)
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천사보다 못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예수님도 천사보다 못하게 지어져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에 나타난 것처럼 사람은 구원을 받아야만 천사보다 더 나아집니다. 그래서 아직 죄는 없어도 천사보다는 못하게 지어져 있는 아담에게 하나님은 이 세상의 통치권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7~28)
하나님이 천사보다 못한 사람에게 이 세상의 통치권을 주시자 사탄은 그것을 탈취할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지만 아직 사람보다는 지혜와 힘이 있고 나름대로 영광이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넘어뜨리면 세상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선악과가 왜 필요했나?보통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의 하나가 선악과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타당성이 입증되어야 합니다.사람들이 가장 의문시하는 것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장차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리라는 것을 미리 아셨을 터인데 왜 에덴 동산에 선악과를 지어 놓으셨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이유에 관하여 대략 다섯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이유선악과란 나무 자체가 사람을 선하게 하거나 악하게 하는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덴 동산에는 많은 실과 나무가 있었습니다. 영생을 얻는 생명과도 있었다고 했으며 보통 먹을 수 있는 다른 실과 나무도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창세기 2:9)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여러 종류의 실과 나무 중에서 한 나무를 가리켜 그것만은 먹지 말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2:16~17)다음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어머니가 사과 두 개를 사다가 하나는 아들에게 주고 하나는 냉장고에 넣으면서, 냉장고 안에 있는 사과는 아빠가 오시면 드릴 것이니 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가 주신 사과를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더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한참 망설이던 아들은 마침내 어머니 몰래 냉장고에 있는 사과를 꺼내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과는 똑같은 사과인데 이번의 것은 먹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고 겁이 나며 어머니에게 야단맞겠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냉장고 안에 있던 사과나 어머니가 주신 사과나 성분은 같고 맛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냉장고 속의 사과는 마음에 두려움을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사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말씀에 있습니다. 선악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많은 과일 중의 하나로, 단지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거기에 붙어 있는 것 외에는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는 것이지 과일의 성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둘째 이유하나님은 아담에게 만물을 맡기시고는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능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권한이 있어도 힘이 없으면 권리 행사를 바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나라를 통치하는 대통령도 힘이 있어야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지구상의 동식물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받았다 해도, 힘이 없으면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힘을 공급받는 데 필요했습니다. 선악과는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내는 나무였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산 안 모든 나무의 과일을 다 먹으라고 하셨다면, 사람은 장차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망각하고 전부가 자기의 것이며 자신이 주인인 것같이 착각하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잊게 되며 마침내는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 사탄처럼 되고 맙니다. 물론 다스리는 능력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정해 놓으시고 그 나무의 열매는 먹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사람은 그 나무를 볼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상기하고 언제까지나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계속 하나님께로부터 받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다스리는 권한과 능력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섬김으로써 능력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그루의 그 나무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셋째 이유사탄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하나님이 이 광활한 우주를 창조하셨을 때 자신이 그 주권자가 되고 섬김의 대상이 되고 싶어 타락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는 악에 대해 경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통치권을 아담에게 주셨지만, 그 주권을 탐을 내고 있는 자, 간교하고 꾀가 많고 악한 자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앞에서 말한 대로 사람은 어느 모로 보나 천사보다는 못한 존재였습니다. 힘으로 보나 지혜로 보나 지위로 보나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였고 장차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까지 오를 자였으나 아직 미완성인 상태였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자신보다 못한 자가 맡은 주권을 빼앗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선악과는 바로 그 악의 세력, 사탄에게 주권을 빼앗기지 않게 하는 방비책이었습니다. 하나니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먹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려 먹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실물을 통해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악이 이미 존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 악의 세력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알게 하여 경계하신 것입니다.
넷째 이유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사랑의 짝으로 지으셨습니다. 사랑은 자유 의지의 활동에서 생겨납니다. 자유 의지 없이 존재하는 동식물들은 법칙에 의해 살아갑니다. 그것들은 진리도 하나님의 사랑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고 자유 의지가 있어서 그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자유롭게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나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자유입니다.에덴에는 선악과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영생하는 생명과도 있었습니다. 그 두 나무에는 삶과 죽음의 조건이 걸려 있었습니다. 아담은 양자 택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자유 의지에 의해 양자택일을 할 수 없었다면 그의 선택은 기계적인 행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며 거기엔 아무 의미도 없었을 것입니다.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들의 앞에는 영생의 길과 멸망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이유다섯 번째 이유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비록 에덴에 살며 죄도 없는 존재였으나 아담 부부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아직은 하나의 피조물, 다시 말하면 만들어 놓은 존재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람들도,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은 쓰기에 편리하고 귀중해도 자기가 낳은 아이같이 사랑스럽지는 않습니다.앞에서도 말했지만 사람에게는 두 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곧 만들어진 사람과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의 구별이 그것입니다. 만들어진 인간은 자연 법칙에 의해 어머니의 태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거듭난 사람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3)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느리라" (야고보서 1:18)
사람은 그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통과되어야만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게 됩니다. 에덴에 있는 아직 죄 없는 아담에게도 그 일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두 종류의 나무를 통해 나타내신 것입니다. 영생의 말씀을 생명나무에, 사망의 말씀을 선악과에.아담이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하는 말씀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선악과에는 영원히 멸망하는 말씀이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둘은 비유며 그림자로, 현재는 성경 속에 생명과가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9)
성경은 생명과이신 예수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생명과는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과일이 맛이 있어도 나무 자체는 먹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 자체를 직접 믿고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의 열매이십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깨닫고 마음에 모시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6:54) 결국 예수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 믿는 것이며 열매를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선악과의 의미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탄과의 대화하나님이 아담과 나눈 대화 속에는 참으로 커다란 축복과 약속이 있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만물을 다스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는 경계의 말씀도 있었습니다.아담은 사탄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말씀밖에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화의 중간에 사탄이 끼어들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회의하는 중에 끼어 들어 욥을 시험한 것같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권을 주신 것을 알고는 또 끼어 들어 그것을 방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아담을 유혹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위장을 했습니다. 당시의 동물 중에는 가장 상냥하고 영리한 뱀으로 가장했습니다. 그 때까지 뱀은 서서 다녔습니다."뱀이 가장 간교하더라"고 했는데 그의 간교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아담을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간교 주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담이며 하와는 간접적으로 들은 자였습니다. 말씀을 직접 들은 책임 있는 자를 넘어뜨린다는 것은 좀 어렵다고 생각하고 간접적으로 들은 자를 걸어 넘길 생각을 한 것입니다.하와는 아담의 아내이며 아담이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짝이었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통해 아담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문제는 하와를 어떻게 상대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와가 뱀을 상대해 주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말을 건넸다가 거절을 당하면 실패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질문사탄은 어떻게 하면 하와가 그의 말에 걸려 들 것인지 그것만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말로 꾀면 소용이 없을 것을 알고 먼저 질문 속에 미끼를 던져 스스로 끌려 오도록 만들리라 생각했습니다. 질문을 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이 어떠냐, 요사이 재미가 어떠냐 등등…. 그러나 관심을 크게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질문이 아니면 안 됩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먹는 문제가 인간의 근본 욕구이기 때문에 떡 문제를 가지고 먼저 시험하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만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좋았는데 오직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 참으로 궁금하고 마음에 걸리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 말씀을 간접적으로 들은 하와는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그래서 뱀은 곧장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는 식의 단조로운 질문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질문 속에 함정을 팠습니다. 사실을 바꿔 슬쩍 반대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자를 대화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
이 부드러운 질문 속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힘이 들어 있고, 또 그 질문에 대해서 바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묘한 유혹의 함정이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의아심을 품게 하는 한편 하와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과 신분을 망각하게 하는 마취제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본래 하와는 사탄과의 대화 상대가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말씀하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명령하신 것이지 하와에게 명령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기 위한 묘책을 찾던 중 하와를 끌어들이기로 공작을 했습니다. 그 질문 속에는 무서운 함정과 이단자의 술책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사탄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 도전하는 이단자였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단자는 한두 번 권고한 뒤에 물리치라고 하셨습니다. 이단자와는 대화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단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은 달콤해도 진리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적인 죄의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틀리게 전하는 것은 어떤 죄보다도 무서운 살인 행위인 것입니다.요한복음 8장 44절에는, 사탄은 거짓말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되게, 틀리게, 제멋대로 전하는 것이 살인죄라는 사실을 전연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고 한 뱀의 말 중 "참으로"라는 말 속에는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가 들어 있고, "너희더러"란 말 속에는 하와의 위치를 아담의 위치까지 올려서 동참시키려는 아첨이 들어 있고, "모든 나무"라는 말 속에는 하와로 하여금 냉정을 잃고 "아니다"라고 반응케 하여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면서 동시에 함정이었습니다.이때 하와는 '나는 모른다'는 한 마디면 족했을 것입니다. 모르는 사실을 가지고는 대화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걸려 들었습니다. 마귀의 말에 걸려 들어서 이제는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2~3)
이와 같이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덧붙였고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와의 마음 속에 있던 불신, 의심이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쯤 되자 마귀는 마음 놓고 자기의 계획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통에 쐐기를 박는 데 일단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참으로 엄청난 축복과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축복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하와의 마음 속에 틈이 생긴 것을 알게 되자 곧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창세기 3:4~6)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거짓말로 돌리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거짓말로 돌려 버리는 신학자들의 말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무신론의 칼 막스,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 성경이 거짓말투성이라는 러셀 같은 사람들은 덮어두고라도,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 가운데도 '성경은 신빙성이 없고 해석 나름'이라고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난도질하는 세상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 학문이 아닙니다. 말씀은 순종할 뿐이지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말을 '연구'해서 순종하는 아들은 참 아들이 아닙니다.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 중에서도 니체처럼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도 사실상 죽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하와를 유혹하여 하나님을 부인케 하던 사탄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고 아버지라 자랑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셨고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호통을 치셨던 것입니다.그 사탄은 지금도 거짓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도전하는 이단으로서, 또는 이단이 아닌 척하는 정통 속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거듭나게 하는 가르침이 있어 루터, 요한 웨슬레, 칼빈, 무디, 피니, 죠지 뮬러, 요한 번연 등 분명히 알려진 경험자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거듭났다고 하면 무조건 이단으라고 단정지으니, 이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고 살인 행위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밀턴의 실낙원 사탄은 하와에게 '결코 죽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 말만 해서는 안됩니다. 그 말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죽지 않는 것을 가지고 왜 하나님이 죽는다고 했는지 그 원인만 확실히 알려 주면 의심의 여지 없이 하와는 사탄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냈습니다.밀턴은 그의 작품 속에서 인간이 낙원을 상실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참으로 멋있는 거짓말로써 인간과 하나님의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첫째로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되고 선악을 자유자재로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영광이나 권능이나 지혜나 주권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님과 같게 되어 하나님도 별 볼일 없게 되며 그의 영광도 없어지게 되므로 못 먹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무엇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이 천지에 모르는 것이 없게 된다는 뜻이며,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도덕적인 선악의 개념만이 아니라 완전한 지혜까지도 갖추게 된다는 뜻입니다. 최고의 선을 안다는 것은 최고의 지혜를 갖는 것이며 최고의 악을 안다는 것은 역시 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면도 다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의 모든 원리와 영원히 감추어져 있는 과거나 미래도 다 아는 것이 완전한 선입니다. 그러한 것을 알게 되고 또한 하나님과 같이 된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시는 그럴듯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하와는 그 거짓말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옳아, 그러면 그렇지. 그래서 못 먹게 했구나'하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이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그 선악과를 쳐다보니, 이것이 웬일입니까? 그것은 전에 보던 선악과가 아니었습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던 그 나무의 열매가 먹음직스럽고 또 얼마나 아름답고 탐스럽게 보이던지, 먹으면 금방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지혜가 솟아나고 뛰어난 존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창세기 3:4~6)
성경에서는 위의 세 가지 욕구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한1서 2:15~17)
하와가 선악과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바로 사람의 속에는 이 세 가지 법칙이 생겨났습니다. 사람은 평생 이 세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갑니다. 먹고 마시고, 이성(異性)을 찾고, 미색으로 눈을 만족시키면서… 또 높은 지위, 명예, 칭찬 등을 찾는 것은 모두 육신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충족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따름인 것입니다. 평생 찾고 있으나 마지막에는 '모두가 헛것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인간은 죽어 갑니다.인간은 그렇게 사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치 않으면서도 죄를 짓게 되었고, 언제나 불평과 불안, 공포와 허전함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이제는 '하나님과 같이'라는 기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결코 만족이 없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이 세상에서 왕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도 이렇게 독백하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 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 내가 마음 가운데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자보다 낫다 하였나니 곧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도서 1:2, 12~18)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내 마음이 궁구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에 지혜로 다스림을 받으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어떻게 하여야 어리석음을 취하여서 천하 인생의 종신토록 생활함에 어떤것이 쾌락인지 알까 하여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지으며 포도원을 심으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주기 위하여 못을 팠으며 노비는 사기도 하였고 집에서 나게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도 소와 양떼의 소유를 많게 하였으며 은금과 왕들의 보배와 여러 도의 보배를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와 인생들의 기뻐하는 처와 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보다 지나고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여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전도서 2:1~11)
그는 권세를 가지고 인생을 바라고 꿈꾸던 것,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해보았으나 모두 헛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귀가 하나님같이 된다고 속였고 그것이 인생의 법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여러분의 가슴 속에 있는 그 공허감과 갈등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흘러내려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의 문제의 발단을 알지 못하던 욥과 세 친구처럼 근본 원인을 모른 채 아무리 처방해도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 근본을 안다면 고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눈이 밝아짐하와는 드디어 그 실과를 따 먹고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아담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닌게 아니라 사탄이 말한 대로 과연 눈이 밝아지기는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밝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에는 자신들의 몸이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했는데 그것이 눈에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먹기 이전에도 벗고 살았지만 그 때에는 벗고 있었다는 것을 전연 알 수 없었습니다.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악을 알 수 있는 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을 때, 그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죄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심한 죄책감과 두려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죄는 양심의 활동에 의해 알아지는 것입니다. 양심에서 죄를 알았다는 것은 바로 눈이 밝아져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몸이 벌거벗었기 때문에 부끄럽게 생각되고 공포심도 생겼습니다. 즉 양심의 눈이 뜨이면서 가책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다른 면으로는 영이 죽었다는 뜻도 됩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은 살아 있었지만 영이 죽은 것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닙니다.성경에서는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에베소서 2:1)라고 말했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 놓은 상태,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그들은 선악과를 먹고 나서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게 되자 '부끄럽다, 무섭다'는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육신의 수치감까지 알게 되어 마침내 하체를 가리는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심이 수치심을 알게 되자 인생의 모든 수치심이 다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옷을 잘 입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수치를 덮으려는 노력이며 여러 가지 종교적인 활동 등도 모두 인간의 수치감, 공포감, 갈등을 덮고 채우려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 치마란 인간의 생식기가 있는 부분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사람은 다른 부분은 가리지 않아도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그러나 생식기가 있는 부분은 보이기를 싫어합니다. 생명을 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생명의 수치와 공포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그 부위를 제일 부끄러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그런 부끄러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부끄러움의 근본은 양심의 부끄러움입니다. 사람의 눈이 띄었을 때 죄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양심의 수치는 시작된 것입니다.죄를 알았다는 것은 죄를 이론적으로 알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의 죽음이며 사람 안에 악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악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반대로 선에 대한 개념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먹은 열매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과 악을 알게된 것은 크나큰 위험이자 멸망이며 죽음입니다. 거기서부터 악의 뿌리가 생겼습니다. 인간이 선악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방법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선해서 악을 아시는 것이며 인간은 악해서 반대 개념인 선을 아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 안에서 아시는 것이며 사람은 죽음 안에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이후부터 아담에게 있어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해 입었으나 하나님이 부르시자 숨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고아처럼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근본,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 모든 은혜와 축복의 원천이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잃어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이사야 53:6)
라는 말씀처럼 잃어진 양같이 되어 목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세기 3:10)라고 했습니다.
저주받은 땅과 인생사람들은 세상을 마냥 살기 좋은 낙원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진실한 마음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3:14~20)
인간은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은 평화롭고 괴로움이 없고 살육이 없고 공포나 수치감이 없고 모두 함께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열리는 과실을 사람도 짐승도 먹고 살 수 있는 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뱀은 서서 다니던 아름다운 동물이었는데 보기 흉하고 배로 다니는 동물로 변하였습니다. 여자들은 뱀만 보면 움찔하고 놀라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뱀과 여자가 원수가 된다는 말씀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뱀과 여자는 원수가 되었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둘이 서로 물고 싸워 결국은 여자의 후손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결국 죄로 말미암아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고 세상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간에 싸움이 선언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그 둘 사이의 싸움으로 엮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뱀의 후손은 무엇을 의미하며 여자의 후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어느 날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제사장, 서기관 등 당시의 유대의 지도자급들이 오는 것을 보고 크게 책망했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태복음 3:7)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태복음 12:34)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33)
이 말은 그들이 마귀의 자식들이란 뜻입니다. 뱀의 후손은 곧 사람으로서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면 여자의 후손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 사람은 전부가 여자의 몸에서 났지만 여자의 후손은 아닙니다. 밭에다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배추나 무를 심으면 배추나 무가 납니다. 그러면 그것들이 밭의 후손이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여자는 밭이며 남자는 밭에 자기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의 혈통을 따라 생명이 태어납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아도 남자의 후손이지 여자의 후손이 아닌 것입니다. 남자가 김씨면 아들도 김씨며, 이씨면 아이도 이씨입니다.그러므로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의 피를 받아 아버지의 혈통에서 태어난 남자의 후손들입니다.그런데, 여자의 후손이 이 세상에 한 사람 태어났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갈라디아서 4:4)예수님은 아버지를 통해 나지 않은 여자의 후손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14)
고 한 대로, 예수님은 동정년 마리아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여자의 후손입니다. 이 분에 관하여는 6천여 년 전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때 벌써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남자의 혈통에서 나면 아담의 후손으로서 죄인이 됩니다. 아담의 후손은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없고 사탄에게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승리하셨고, 재림하시면 사탄을 잡아 무저갱에 던짐으로써 완전히 승리하십니다. 그러나 뱀의 후손인 바리새인과 유대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니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그런데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으로부터 살려내셨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의 시나리오죄의 결과로 마귀만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차례로 여자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고통 중에 해산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없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여자의 일생은 독자적인 것이 못되고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혹시 남편을 잃어도 역시 여자는 짝 잃은 자로서 죽지 부러진 새와 같이 됩니다. 남자를 사모하면서 산다는 말로 운명지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죄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6~19)
아담의 죄로 인하여 땅은 저주를 받게 되었고 아담은 땀흘리며 수고를 해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그렇게 애쓰다가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것이 선언되었습니다.이 세상을 생각해 봅시다. 농사를 지어 먹느라고 수고하는 모습, 가뭄이나 홍수로 애써 지어놓은 농사를 다 망쳐 애태우는 모습, 사막의 변두리에서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유랑하는 모습 등 ….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하고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인간의 역사입니다.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시편 90:10)라고 했습니다. 돈을 모아 잘사는가 싶더니 그것도 순간이요, 어느덧 머리는 파뿌리가 되고, 찾아오는 백발과 죽음을 면할 길 없어 사라져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죽음 앞에선 권력도 재산도, 지혜도 꿈도 다 허물어지고 맙니다. 인생이 청운의 꿈을 안고 미래를 설계하나 모든 것은 다 허무한 데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늙고 병이 드니 백발을 어이하리소년 행락이 어제런 듯 하다마는 어디가 이 얼굴 가지고 옛 내로다 하리오.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늙은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기로 오더라.
내 청춘 누굴 주고 뉘 백발 가져온고오고 가는 길 아는 듯 막을 것을알고도 못 막으니 이를 설워하노라.
이 얼마나 처절한 시입니까? 늙어 가는 인생을 붙잡아 보려는 애절함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왕후 장상, 군자, 철학자, 종교인 할 것 없이 누구 하나 저물어 가는 인생의 운명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습니까? 바로 죄로 인하여 인생의 살 터전이 저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 흐르는 두 종류의 계획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되며,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멸망시킨다는 말씀을 선포하신 후부터 인간의 역사에는 두 세력, 즉 두 흐름이 맞서게 되었습니다. 전술한 대로 여인의 후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뱀의 후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인간들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여인의 후손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께 속하고 뱀의 후손은 곧 사탄의 자손들이니 사탄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탄의 공방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결국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멸망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가능한 한 멸망치 않으려고 하거나, 멸망한다 하더라도 그 기한을 연장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힘을 총동원할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 역사의 이면에 흐르는 힘입니다. 그 중에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 보아도 이 세상은 사탄에 의해 이끌려 가다가 결국은 멸망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미래에 될 일을 말씀하시던 중, 여인의 후손이 태어나면 뱀과 원수가 되고 그 머리를 상하게 한다고 하셨을 때에 여인인 하와는 그 말씀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낳을 아들이 그 원수인 사탄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범죄한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즉시 사탄에게 속게 됩니다. 아들을 낳자 하와는 그 아들이 원수를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고 생각해서 '가인'이란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탄의 계획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 믿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처럼 사탄은 교묘한 수법으로 사람을 계속 속이고 있습니다.원수를 갚아 줄 것으로 기대했던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을 뿐 아니라 노아의 홍수 전, 세상이 멸망에 이르도록 죄악을 퍼뜨린 장본인이 되었던 것입니다.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함 계통 중에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니므롯에 의해 바벨탑이 건축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우상 숭배는 바로 이 바벨탑으로부터 생겨났습니다.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자손들은 급속도로 번성하였고, 이들이 현재의 이라크 땅인 시날 평지에 살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는 맹수들도 급속히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맹수들은 노아의 홍수 때 자기들을 살려 준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람들을 마구 해쳤습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했고, 당연히 맹수 사냥을 잘 하는 사람이 영웅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그 사냥꾼 중에 특이한 사냥군이 바로 니므롯이었습니다.(창세기 10:10) 그는 영걸, 영웅이라 불렸고 마침내는 신으로 숭배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니므롯은 자기를 숭배하는 전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성전을 건축했는데, 이것이 곧 바벨탑입니다.성경 외에 전하는 문헌에 의하면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라는 아내가 있었고 담무스라는 아들도 있었습니다.(에스겔 8:14) 니므롯은 자기 아들 담무스가 바로 '하늘의 여왕'의 아들이라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이 ……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자기 아들에게 적용시켜, 내 아들 담무스가 바로 '여인의 후손'이라고 그 시대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여인의 후손'을 기다리던 그 당시 사람들은 니므롯의 거짓 선전에 꼬임을 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담무스를 낳은 자기 아내는 '하늘의 여신'으로, 자신은 '태양신'으로 섬김을 받았습니다.당시 니므롯에 의해 지배를 받던 사람들은 니므롯, 그의 아내 세미라미, 그리고 아들 담무스를 신으로 숭배하기 위해 신전인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 곳에 강림하시어 사람들의 언어를 혼잡케 함으로써 그 공사는 중단되고 그 시대 사람들은 온 세상에 흩어졌는데, 그 때 우상을 숭배하는, 이른바 바벨론 사상이 전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터어키에 가면 니므롯을 섬기는 니므롯 산이 있고, 니므롯을 태양신으로 섬기는 거대한 석상이 그 산에 가득 차 있는데, 현재 그 곳은 이름난 관광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이집트에서는 여신을 섬기는 종교가 생겼고, 중동 지역에서는 전반적으로 바알(Baal)신을 섬기는 우상의 종교가 생겼습니다. 이 바알신은 농사에 관계하는 신으로서 하늘에서 빛과 비를 내려주어 농사가 잘 되게 하는 신으로 섬겨졌는데 이 또한 태양신의 일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그 바알신과 여신을 섬겼던 적이 있었습니다.(예레미아 44:17)또 그리이스에서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신과 주피터, 아폴로라 불리는 신들이 나타났고, 로마에서는 구체적으로 태양신 숭배 사상을 이어 받았습니다.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양력도 태양신 숭배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며 크리스마스(12월 25일) 또한 태양신 숭배일이었습니다.로마의 제 1대 황제는 바벨론에서 전수된 태양신을 숭배하는 성직을 계승했고 그것이 로마 황제 숭배 사상으로 바뀌었으며, 황제를 숭배하지 않았던 많은 기독교인들은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면서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서 로마 제국이 완전히 분열되기 바로 직전, 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Gratianus)가 주후 376년에 바벨론 성직을 거부하자, 다마서스(Damasus) 주교가 그 성직을 계승하게 되니 그가 바로 로마 카톨릭의 첫 교황입니다.(Babylon Mystery Religion by Ralph Woodrow, 1981. Ralph Woodrow Evangelistic Association, Inc. 참조)이렇게 사탄은 속이는 데 명수로서 여인의 후손에 대한 예언을 왜곡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속였고 기독교도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나 말세에 큰 음녀가 나타나 활동할 것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으니, 그것은 타락한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타락한 교회인 음녀는 사탄의 대리자인 적그리스도를 출현시키는 모든 준비를 다할 것이며, 그에 의해 이 세계가 잠시 통치되다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천년간 이 세상을 통치할 것입니다.
9.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인간의 생활에는 계획이라는 것이 있고 설계라는 것이 있어서, 크든 작든, 개인적이든 공적이든 그 짜여진 계획과 설계대로 일이 진행됩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 전에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먼저 있었습니다. 인간의 역사는 그 말씀대로, 그 계획대로 실행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면 몇 가지 성경에 나오는 기록과 역사를 관련시켜 보겠습니다.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는 이미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었으니 재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때 노아의 전 가족은 지상의 물이 줄어들기를 기다리면서 배 안에 있었습니다. 물은 차츰 증발되고 또 그 일부는 강한 바람에 의하여 남과 북으로 몰려 가 얼음 대륙이 되어 감에 따라 점차 육지가 드러나게 되고 방주는 아라랏산에 가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배에서 나와 농사를 짓게 되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포도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어느날 노아는 포도주를 과음하여 옷을 벗은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셈과 함과 야벳이라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나체로 잠이 든 노아의 모습을 보고 이 삼형제가 취한 태도는 장차 인류 역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신화처럼 생각되는 작은 일이었지만 지구상의 삼대 종족의 장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둘째 아들 함은 아비의 하체를 보고 형제들이 있는 들에 가서 흉을 보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자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뒷걸음질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습니다. 노아가 잠에서 깨어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삼 형제의 장래에 대해 각각 예언을 했습니다.함의 아들 가운데 가나안이란 자가 있었는데 특히 그에게는 노예의 운명이 예언되었습니다. 그 가나안은 지금의 팔레스타인의 옛 주인으로, 그곳을 가나안 땅이라고 하는 것도 그들이 거기에 뿌리박고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스라엘이 그곳에 들어가 그곳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고, 거기에 살고 있던 가나안 족속 중에서 블레셋(현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은 성경에 함 땅이라고 해서 함의 후손들이 차지했으나,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 아프리카 흑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노아는 또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창세기 9:26)
그런데 왜 셈의 하나님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셈의 계통에서 나실 것, 곧 하나님의 아들이 셈의 계통에서 탄생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 사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된 선민은 셈의 계통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모든 계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성경의 형성, 예수님의 탄생, 구원의 역사, 예수님의 재림, 종말의 역사 등이 전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었으므로 셈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현재의 일본, 한국, 중국, 동남아, 이란 등 인도 이외의 아시아인은 전부 셈의 계통입니다.그는 또,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서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9:27)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전 지구상에 유럽의 백인들이 물질 문명뿐 아니라 정신 문화면에서도 가장 번창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미주 지역의 인디안은 분명히 아시안 계통이었으나 백인들이 들어가서 모든 권리를 빼앗고 거대한 자원의 나라를 차지했으며 현대 문명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한때는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등이 지구의 상당한 부분을 식민지로 차지했던 적도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창대했습니다.그런데 그 다음 셈의 집을 야벳의 계통이 점령해서 살게 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셈의 계통인 이스라엘 민족 속에 오셔서 구원과 교회라는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지나간 2천 년간 그 장막을 야벳의 계통인 백인들이 점령하고 살았습니다. 백인들의 사회는 다른 인종들의 사회같이 잡다한 신을 섬기는 일 없이 2천 년의 역사를 기독교라는 장막 속에서 이어왔습니다. 지금은 물론 종말이 가까이 와서 무신론자들도 많이 생기고, 또 하나님을 불신하는 방향으로 많이 기울어지고 있으나 거의 2천 년 동안 그들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또 창세기 10장을 읽어 보면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들이 분산해서 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삼 형제의 후손들의 이름은 각 지역의 지명이 된 것입니다. 야벳의 후손들의 이름은 유럽 지역의 이름이 되고, 함의 후손들의 이름은 아프리카 지역의 이름이 되고, 셈의 후손들의 이름은 서부 아시아 지역의 이름이 되었습니다.그리고 나서 11장에는 시날이란 곳에서 탑을 쌓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시날은 현재의 이라크입니다. 노아의 후손들이 아라랏산에서 내려 동방으로 옮겨 가다가 시날 평지인 유프라테스강 연안에 자리를 잡고 살다가 하나님을 도전하는 탑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작업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인종이 살고 있는데 그 인종마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언어가 달라지고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된 원인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책에서 그와 같은 사실과 그 원인을 이처럼 분명히 말한 곳이 있었습니까?오늘날 지구상에 여러 종류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려는 인간의 계획을 중단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 일 이후 인간은 서로 한 마음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서로 대결하고 싸우게 됨으로써 인간 사이에 교제가 끊기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선민의 역사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이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통해서 창조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어야 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서 대표자를 선정하여, 그들과 함께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을 통해서 전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리시고, 인간을 향한 목적을 이루어 가시고자 했습니다.이러한 인류의 대표자로 선정된 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것은 물론 창세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 민족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정체를 나타내시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에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나신 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속성, 신성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골로새서 2:9)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골로새서 1:15)
사람들은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거나 부인을 합니다. 그러나 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인간들이 믿을 수 있도록 육신을 입고 인간의 역사속에 나타나시는 것이 왜 불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한 민족을 선택한 것입니다.
마귀는 알고 있었다창세기 3장 15절에서 이미 말했듯이, 마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 싸움이 있을 것이며, 결국에는 여인의 후손이 마귀의 후손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면 자신이 멸망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마가복음 1:24)
이 말은 마귀들린 자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한 말입니다. 마귀는 여인의 후손인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자기가 멸망당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역사속에는 사탄의 마수가 뻗쳐 그 혈통이 끊어질 뻔했던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그 실례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는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마태복음 1:3)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다는 시말의 시아버지 였습니다. 사단의 계획에 의하여 그 후손이 끊어지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비상한 방법으로 이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유다지파에서 나온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은 수없이 많은 원수의 세력에 의해서 공격되었으나 그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한 손길에 의해서 구원되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을 탄생시켜야 하는 일 때문에 언제나 멸망하는 데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그 민족 전체에 역사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 속에서 구원을 얻을 사람들의 그림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에 파트너로 선택된 민족인 것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브리서 1:1~2)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계획과 뜻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특수한 역사를 이루어 오며 불가사의한 민족으로 등장한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율법을 통한 관계성경을 보면 인류의 역사는 B.C. 약 4천 년경부터 시작되는데,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의 선택까지가 약 2천 년으로서 이 때를 시작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 후 2천 년(예수 탄생까지)간은 선민의 시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 후를 A.D.라고 하는데, A.D. 2천 년간은 교회 시대이며, 재림 후는 천년왕국의 시대가 됩니다. 이렇게 역사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에 의하여 경영되어 가는 것입니다.노아의 후손들이 시날이라고 하는, 현재 이라크의 바그다드 근처에서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그 근처 우르라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자기 중심적이며 자기의 영광과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도성을 쌓던 인간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목적으로 아브라함을 그곳으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질 성전을 영원한 천국의 그림자로서, 멸망당할 바벨탑에서 불려 나와 영원한 천국의 도성, 새 예루살렘을 건설할 구원받은 사람들의 상징이었습니다.그리하여 아브라함이 가나안땅에 들어갔으나 아브라함의 생전에는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새로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했는데, 그 이스라엘 때에 애굽에 들어가게 되고 4백 년이 지난 후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유명한 출애굽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출애굽 때에 홍해가 육지같이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2백여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통과하고 그들을 잡으려고 뒤쫓아 온 바로왕과 그 군대들은 모두 물 속에 잠겨버린 사건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어떤 학자는 그 때 금성이 태양의 인력권에 돌입하면서 그 인력의 초점이 홍해에 맞추어 졌기 때문에 원자탄 1천 개 상당의 힘이 작용함으로써 홍해 물이 갈라졌다고 합니다. 또 애굽의 피라밋은 거의 모두 발굴되었는데 그 당시의 애굽왕 바로의 미이라는 다른 왕들의 미이라와 완전히 구별이 된다고 합니다. 즉 얼굴의 색깔이 다르고 귀 부분이 뜯겨진 채로 보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실은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홍해 건너편 시나이 반도 끝 부분에 있는 시내산 밑에까지 왔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현재까지 그 율법을 지키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심으로써 이스라엘이란 선민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장차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실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실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곧 하나님의 뜻인 말씀이 예수라는 육신 안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병자도 나았고 죽은 자도 살아났으며 바람과 풍랑도 잔잔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면 사람들이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한복음 5:25)
이 약속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곧 선민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다 함께 참예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는 오로지 선민에게만 하나님의 말씀의 지표인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을 향해 율법도 받지 않은 짐승같은 인생이라고 하며 교만해졌던 것입니다.
성전의 의미하나님은 성전을 지을 목적으로 아브라함을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브리서 11:8~10)
그러나 아브라함 때에도, 그 후 아들 이삭 때에도, 손자인 야곱 때에도 그 성전은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전에는 지성소 안에 하나님의 상징인 법궤가 있어야 합니다. 법궤는 율법을 돌에 새긴 비석 돌을 넣어 놓는 궤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참 성전이었습니다.그 성전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제단에서 제물을 잡고, 피는 하늘 나라의 상징인 지성소에 제사장이 가지고 들어갑니다. 그곳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전을 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법궤를 모신 성전이 이룩됨으로 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나는 장소가 마련되고 양자의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모두 참 것의 그림자이며 비유입니다. 지어진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한복음 14:9)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 속에는 너무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될 때에 멀리 있던 하나님을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범할 때는그러나 구약의 율법에는 또 다른 뜻이 있었습니다. 율법은 십계명, 제사법, 재판하는 민법의 세 가지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십계명만 돌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십계명의 율법은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며 십계명을 범하면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또 하나의 목적은, 하나님을 버리고 법을 어기는 사람은 이렇게 벌을 받는다는 것을 시범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벌을 받으면서 지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다 말씀하신 후에,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범하는 때에는 벌을 받는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할할진대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가 더 징책하리니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내가 너희 성읍으로 황폐케 하고 너희 성소들로 황량케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향을 흠향치 아니하고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레위기 26:27~33)
이 말씀은 율법을 범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면 죄보다 칠 배나 더 무서운 벌을 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사실인지 역사 속에서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형벌의 시대이상의 성구 속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했을 때에 받을 벌이 네 가지로 나타나 있습니다.그 저주의 예언이 있은 후 1천 5백 년이 지나서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메시야로 탄생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후 그 첫 번째 목적이 달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그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들은 순전히 육신적인 욕심에만 사로잡혀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볼 때 예수님의 활동에는 그들을 정치적으로 구원해 줄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그가 외치는 소리는 모두 귀에 거슬리는 소리뿐이었습니다.유대인들은 율법의 근본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과 생활이 심히 못마땅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물론 로마의 법과 힘을 빌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빌라도가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었을 때 유대인들은 "예수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라"고 소리쳤습니다.하나님에게 대항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이 내렸습니다. 이스라엘의 2천 년의 역사는 바로 그 하나님의 형벌을 받는 역사였습니다. 죄보다 칠 배나 무서운 형벌이 2천 년간의 역사 속에서 그들에게 그대로 내려졌습니다. 참으로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될 만큼 참혹한 역사였습니다.
예언과 성취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후 약 40년이 지났을 즈음, 곧 A.D. 70년에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가 군대를 몰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로마군은 대군이었으나 해발 800m 이상 되는 산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기 까지는 5개월이 걸려야 했습니다. 그 동안 성은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으므로 식량이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미리 준비해 두고 전쟁하지 않는 한, 성안에 식량이 있을 리도 없었습니다.오랫동안 먹지 못하고 굶주리게 되자 어떤 사람은 마음이 변하고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아들을 잡아먹고 딸을 잡아먹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죠세프스의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멸망했습니다. 네 가지 형벌 중에 첫째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다음 이스라엘 땅은 완전히 황무지로 변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상에 흩어졌습니다. 죽은 자만 해도 수십만이고, 포로로 잡혀간 자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전국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였으며 스스로 피해간 사람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이것이 둘째 형벌과 셋째 형벌입니다. 예루살렘은 그렇게 망했습니다.TV에도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만 끝까지 항쟁하다가 참혹하게 전멸하고만 맛사다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합니다. 맛사다는 예루살렘 동남쪽 사해의 연안에 있는 높은 언덕인데, 그곳은 유명한 요새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중 일부가 맛사다 성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험준한 요새여서 로마 군대가 아무리 공격해도 공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위를 하고 스스로 지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끈질기게 버티던 유대인들도 나중에 더는 견디지 못하게 되자 몽땅 자결을 했습니다. 로마군이 성에 쳐들어 갔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였습니다. 장정들이 칼로 가족을 모두 죽이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장정 전부를 죽인 후 맨 마지막에 남은 한 사람도 자결로써 최후의 순간을 장식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점령한 후 1900년간 그 땅은 완전히 황무지가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120여개 국으로 흩어졌습니다.
결 과이와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 받을 형벌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 멸망 후 전세계로 이산되어 수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예루살렘 멸망의 역사적 사실과 십자군 시대의 유대인 박해, 2차 세계 대전 때의 박해의 역사를 아래에 소개합니다.여기에 소개할 내용은 살렘 키르반의 저서 '이스라엘 최후의 날'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침략자 타이터스A.D. 64년, 당시의 로마 황제는 네로(Nero)였다. 네로는 게시우스 플로루스(Gessius Florus)를 새로 유다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플로루스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신망을 얻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파렴치한 일을 드러냈다. 그는 예루살렘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며 약탈을 일삼으면서 유대인들이 반항을 하고 나서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플로루스는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고 해서 3천 3백 6십 명의 유대인을 죽인 적도 있었다. 그는 성전의 보물을 마음껏 강탈할 생각을 품고 성전에 들어갔다.그래서 유대인의 대표들은 분봉왕 아그립바 2세를 찾아가서 로마에 서신과 외교 사절을 보내어 플로루스를 다른 곳으로 전출시켜 줄 것을 간청했다.로마의 분봉왕 헤롯 대왕의 자손인 아그립바 2세는 이런 귀찮은 문제에 당면하자 유대인들을 진정시키려고 유대인의 대표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는 유대인들이 때에 따라서는 로마를 상대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로마와 전쟁을 할 경우 그대들이 의지할 만한 병력과 무기가 어디에 있는가? 로마의 둘레에 있는 바다를 제압할 함대는 또 어디에 있는가? 로마로 원정을 떠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또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당신들은 이집트나 아랍처럼 로마가 그렇게 간단히 보이는가?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굳게 지켜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지난번에 있었던 브리튼 성의 방어전은 사방이 바다였고 주민의 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인구만큼 많았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바다로 건너가서 그들을 격파하고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그기로 거기에는 4개의 로마의 군단이 주둔하고 있다.하늘 아래에 있는 국가는 거의 전부가 로마의 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다. 로마에 항거하던 카르타고인들이 어찌되고 말았는지 생각해 보지도 않았는가? 남들이 다 로마와 싸우다가 비참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들만은 이긴다고 생각하고 전쟁을 벌이겠다는 것인가?그대들은 하나님과 동맹을 맺는 것 이외에는 달리 피할 방도가 없다. 하나님은 로마 편을 드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로마가 그분의 도움없이 그토록 큰 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만약 당신들이 옳은 길을 택하면 당신들은 나와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들이 마음 태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반드시 큰 재앙을 만날 것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 (죠세프스, 유대인의 전쟁사)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아그립바 2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일부의 반란군들은 로마군의 병영이 있던 맛사다를 점령하고, 거기에 있던 로마군을 전멸시켜 버렸다. 그것을 계기로 사태는 로마의 앞잡이인 아그립바 2세의 군대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반란군 사이의 내란으로 돌입했다.3백 명에 달하는 로마의 병사들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인들은 모두가 들고 일어나서 가이사랴 지방에서 2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살해되는 것을 묵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서 로마인들은 갈릴리 지방에서 조직적으로 유대인들에게 보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6천 명에 달하는 청년들이 네로 황제에게 끌려가서 고린도의 공사장에서 혹사당했다. 한편 1천 2백 명에 달하는 노인들이 살해되었고 3만 명이 노예로 팔렸다.그러는 동안에도 시리아 지방의 로마 총독 게스티우스 갈루스(Cestius Gallus)는 예루살렘 사태를 진압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패하고 말았다.로마는 모욕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패망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앞날은 갈수록 쓰디쓴 고난의 길이요 태산이었다.
네로 황제의 등장그 무렵 로마의 폭군 네로는 헬라 지방을 여행하고 있었다. 늘 음악이 뒤따랐고 매우 극적인 무대가 펼쳐지는 여행이었다. 그때 그는 스물 아홉 살이었다. 그의 업적이란 것은1. 그의 부하에게 그의 모친을 시해하도록 명령한 것2. 부유한 그의 숙모를 죽인 것3. 그의 스승 세네카에게 자살하도록 명령한 것4. 대중 앞에서 소년 소녀들에게 추행을 일삼은 것그러한 네로는 예루살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 베스파시안 장군에게 명하여 토벌케 했다. 베스파시안은 먼저 그의 아들인 타이터스를 알렉산드리아에 보내어 1개 군단의 병력을 확보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들과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그들 부자가 거느린 총 병력은 5만 8천이었다.누구나 그 때의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옆구리에 칼을 차고 손에는 창을 들고 말을 탄 기병 부대, 큰 타원형으로 된 방패를 번쩍이면서 중무장을 한 로마의 병사들이 거리를 메꾸었다. 수천 명으로 이룩된 군단이 몇몇 지나갔는데 각 군단의 앞에는 멋진 제복을 입고 로마의 영광을 상징하는 금 독수리를 떠받들고 행진하는 군악대와 의장대가 선두에 섰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금독수리를 유독히 미워했다.그러다가 네로가 죽자 황제의 자리를 둘러싸고 정적들이 서로 싸웠다. 그 결과 황제의 자리는 베스파시안에게 돌아갔다. 때는 A.D. 70년이었다.
예루살렘을 파괴한 자 타이터스황제가 된 베스파시안은 로마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아들 타이터스를 보내어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케 했다. 예루살렘이 실질적으로 포위된 것은 A.D. 69년이었다. 그러나 타이터스가 로마군의 총사령관에 취임한 것은 다음 해의 봄이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성의 북쪽 외곽 벽을 허물어 버리는 데는 며칠 안 걸렸다.그 다음 타이터스는 성벽 중앙부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그 결과 중간 벽도 문제없이 무너졌다.남은 것은 내부의 성벽 하나뿐이었다. 이것만 무너지면 만사는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담의 서쪽은 헤롯 왕의 궁전에서 시작하여 동쪽은 성전이 자리잡은 언덕까지 뻗어 있었다. 이 내부의 벽은 예루살렘의 심장부를 지키고 있었다. 이 벽 안에는 성전도 있었다.로마군은 이 최후의 보루를 빼앗기 위하여 최고의 전략을 발휘했다. 방어를 하는 유대인들은 40개의 투석기와 화살을 퍼붓기에 편리한 축조물을 3백 개 가량 구축해 두었다.그러나 예루살렘 시는 로마군보다는 굶주림에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견디다 못하여 어떤 유대인들은 로마군이 점령한 시가지로 몰래 들어가서 식량을 구해 가지고는 성전이 있는 지역으로 되돌아 오려고 애썼다.타이터스의 공격이 개시되자 다른 유대인들은 금 덩어리를 집어 삼키고 포위된 예루살렘을 벗어나려고 했다. 로마와 동맹을 맺은 야만족 파르시아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가지고 금화를 꺼내려고 배를 가르기도 했다.
매일 5백 명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처형되다날마다 많은 유대인들이 붙잡혔다. 타이터스는 붙잡힌 자들에게 로마의 형벌 중 가장 엄한 것으로 다스리기로 했다. 역사 학자 죠세프스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로마군은 매일 5백 명 또는 그 이상의 유대인 포로들을 붙잡아, 방어하고 있는 예루살렘 시민들이 환하게 보이는 성벽 밖에서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았다. 타이터스가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은 공격 중인 성 밖의 새로운 성을 쌓아서 예루살렘성 안에 있는 유대인들이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그 방법은 효과가 컸다. 성 안에 있던 유대인들은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허리에 두른 가죽 허리띠와 구두의 가죽을 갉아 먹었고 마른 풀을 씹었다. 유대인의 방어벽은 사실상 무너졌다. 그러던 어느날 로마군은 마침내 성전이 있는 지역을 탈취하는데 성공했다. 죠세프스의 말에 따르면 어떤 광적인 로마 병사가 이미 불타고 있는 외곽벽의 성문에서 불붙은 목재를 들고 달려가서 성전 안에 바로 집어던졌다.타이터스는 성전이 화염에 휩싸이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하여 그의 막사에서 밖으로 뛰쳐나왔다. 불타는 성전은 그것을 구경하던 로마의 장병들을 흥분케 했다. 로마군은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 높은 층대 위에까지 쌓이게 하는가 하면 성전 뜰에 아무렇게나 버리기도 하였다.그 제단은 물론 번제를 드리는 제단이었다. 병사들은 성전에 있는 각종 보물을 손에 움켜 잡았으며 값진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성전은 언덕 위에 높이 서 있었다. 그래서 시가지에 있던 유대인들은 간장이 찢기는 비통한 심정으로 불타는 성전을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버리셨던 것이다.놋쇠와 은으로 된 성전의 문도 다시는 못 보게 되었다. 네 가지 색깔의 장막도 사라졌다. 그리고 성전의 보화도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대제사장도 없고 아침 저녁으로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일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분노에 가득찬 붉은 불길이 유대인의 패망을 소리높여 부르짖었고 뭉게 구름처럼 피어오르며 그칠 줄 모르는 검은 연기가 예루살렘성 변두리의 촌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신호를 보냈다.타이터스는 폭동을 일으킨 유대인의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은 쇠사슬로 묶어서 애굽으로 보내어 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시키거나 또는 로마로 데리고 가서 노예 시장에 내다 팔았다. 또 어떤 사람은 검투사가 되어 광란하는 구경꾼들 앞에서 칼을 들고 맹수들과 피비린내 나는 사투를 해야만 했다. 타이터스는 예루살렘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은 베스파시안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2년 만에 파멸되고 말았다. 때는 A.D. 70년 8월 28일이었다. 예루살렘은 그 때까지 다섯 번 공격을 받았으나 잿더미가 되기는 이번이 두 번째였다.애굽왕 시샥, 안티오크스 4세 그리고 폼페이, 소시우스 및 헤롯 등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점령하는 데만 그치고 예루살렘을 화염의 불길에서 구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바벨론의 왕은 그것을 파괴해 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7세기가 흘러간 다음에 타이터스가 그와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혼인 잔치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신랑은 유리잔을 발꿈치로 밟아서 깨어지게 한다. 이것은 그 옛날 성전이 파괴당했음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이다. 그 후 타이터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그는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12년 만인 A.D. 81년에 죽고 말았다.
하드리안 황제의 유대인 박해A.D. 117년 타이터스의 뒤를 이어서 푸블리우스 아에리우스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가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긴 정식 이름보다도 하드리안(Hadrian)이라는 짧은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드리안 황제가 건축한 것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의 여러 신을 모신 판테온(Pantheon) 신전일 것이다.그가 처음으로 이룩한 치적 중의 하나는 담세 능력이 없는 빈민에게 면세의 혜택을 베풀었다는 사실이 있다. 그 때 그가 면세한 금액은 달러로 환산하여 3천 5백만 달러라는 엄청난 것이었다.A.D. 130년에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때 성지 예루살렘은 여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고 거리는 60년 전에 타이터스가 만행을 저지른 직후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하드리안 황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시를 보고 깊이 느낀 바가 있었던지 예루살렘을 시로 재건하여 그 이름도 '아에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고치라고 명령했다.그러나 예루살렘을 재건하여 이교도의 도시가 되게 한 사실은 많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그래서 하드리안 황제는 유대인들이 새로운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할례를 금함은 물론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는 것을 철저하게 금했다. 그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인두세라는 새로운 세금을 부과했다. 또 그는 유대인들이 매년 지정된 날 하루만 예루살렘에 와서 옛날 유대인들의 성전이 서 있던 폐허에서 통곡하는 것을 허용했다.지난날 예루살렘성에서도 사람들은 이제 로마의 주피터 신과 비너스 여신을 받드는 신전을 보게 되었다.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을 허허벌판으로 유인해 내어 약 5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 바로 하드리안이었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기억하고 있다.바코호바는 유대인들의 독립 투쟁을 열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하여 구세주의 깃발을 휘날리는 기수가 되었다. 그래서 A.D. 132년, 두 번째의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인들은 2년 만에 드디어 폭동을 진압했다. 유대인의 기수는 죽음을 당했다. 옛 성전의 모습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하던 흔적조차 하나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으니 예루살렘시는 아에리아 카피톨리나라는 로마의 도시가 되어 버렸다.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유다 지방에서는 천여 개의 마을들이 파괴당했다. 이 전쟁이 끝날 무렵에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여 황폐한 사막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다 지방의 주요 생산물인 올리브는 100년 이상 수확할 수가 없었다. 결국 로마는 또 한차례 승리를 거둔 셈이었다.로마 정부는 유대인들의 완고한 선민 사상을 뿌리 뽑기 위하여 유다 지방의 명칭을 팔레스티나라고 바꾸어 버렸는데 이는 블레셋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오랜 적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시가지 전체를 몇 개의 아담한 지구로 나누기 위하여 시가지의 중심에서 직각으로 교차하는 넓은 도로를 설치하였는데 오늘 날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로마인들은 도로의 양쪽에 가로수처럼 기둥을 세웠다. 공중에서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 마치 큰 십자가를 예루살렘시 전역에 들씌운 것 같은 느낌을 준다.하드리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에 비너스와 주피터를 위해 신전을 세웠다. 그리고 솔로몬 성터에는 돼지를 조각한 큰 문을 세웠다. 유대인은 아무도 시내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만일 들어가는 자가 있으면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오직 로마법이 정한 1년 중 단 하루만이 허락되었다.이제 예루살렘은 "아에리아"라는 이름의 이교도의 도시로, 그리고 로마군이 주둔하는 하나의 작은 지방 도시로 전락해 버렸다.그 옛날 여호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주신 성스러운 땅을 유대인들이 다시 찾을 때까지는 무려 18세기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가야만 했다.
부패한 십자군십자군의 탄생은 아마도 중세기에 있었던 가장 큰 비극이다. 우리가 흔히 암흑 시대라고 일컫는 중세기는 세계의 역사상으로 말한다면 서기 400년에 시작하여 1400년까지 계속되었다.십자군 운동을 불러 일으킨 것은 무엇인가?십자군 운동은 다음 네 가지 이유 때문에 일어났다.1. 1070년 터키는 애굽의 파티미즈(Fatimids)에서 예루살렘까지 탈취했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즉시 성전의 옛 터를 파괴하고 성지 순례자들을 압제했다.2.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고 있던 동로마가 국력이 쇠약해져서 터키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 버렸다.3. 이탈리아에 있던 몇 개의 상업 도시가 새로 일어나는 상업의 힘을 신장하여 지중해에서 자라나던 모슬렘의 세력을 꺾으려고 했다.4. 야심만만했던 교황 우르반(Urban) 2세가 동로마 교회를 다시 한번 교황의 통제하에 두고 로마를 세계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다.프랑스 출신인 이 교황은 추운 11월 어느날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매우 열정적으로 호소했다.
거룩한 무덤으로 가는 대열에 서라. 성스러운 땅을 사악한 족속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내라. 그 자들로 하여금 너희들 앞에 무릎을 꿇게 하라.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그 고귀한 도시는 너희들이 와서 도와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너희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열렬하게 이 원정의 대열에 끼어라. 그러면 하늘 나라에서 영원 무궁한 영광의 상을 반드시 받을 것이다.
1096년 3월, 제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다. 각국에서 모여든 연합군은 총 3만에 달했다. 그들이 예루살렘성에 도착한 것은 3년 뒤인 1099년 6월 7일이었다. 도중에서 많이 낙오되고 남은 병력은 1만 2천에 불과했다.
십자군의 아랍인 학살십자군이 그들의 공격의 결과르 기록한 것을 읽어 보면 현대의 전쟁 일지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다음은 그 중 한 토막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수많은 아랍인의 목이 날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화살에 쓰러지거나 높은 탑에서 강제로 뛰어내려야만 했다. 그 나머지는 며칠 동안 고문 끝에 뜨거운 화염 속에서 불타 죽었다. 거리에는 잘려 나간 머리와 손발들이 즐비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람과 말의 시체를 헤치고 다녀야 했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약 7만 명의 회교도들은 무참히 살해당했던 것이다. 한편,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회당에 갇혀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십자군의 병사들은 아랍인과 유대인을 구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소위 이교도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하기 위하여 가슴에 십자가를 달고 유럽에서 원정 온 십자군의 장병들 손에 아랍인은 물론 유대인도 참혹한 운명을 맞이했다.소규모의 몇몇 십자군 운동 외에 세 가지의 큰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291년에 모두 실패로 끝났다. 사실 서기 6백년 대에 유대인들은 아랍군에 합세하여 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하메드에게 재산을 몰수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하메드가 죽자 아랍인과 유대인은 약 5백 년간 비교적 평화를 누리며 공생해 나갔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으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아랍의 보복십자군의 공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은 아랍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회교도들은 다른 종교를 무섭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기독교까지 아랍인의 손에 화를 당하게 되었다.유대인들은 8세기부터 10세기까지 불안해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번영을 누렸다. 회교도들이 스페인을 지배하고 있었을 때 스페인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은 약 3백 년간 별다른 박해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태가 돌변하여, 1066년 아랍인은 그라나다에서 4천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집에 들어가서 가재 도구를 마음대로 약탈했다. 그리하여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로왔던 잠깐 동안의 시기는 끝이 났다.한 회교 신학자는 "유대인들은 모하메드가 622년 메카에서 메디나로 도망간 것을 기념하는 500주년 기념일까지 그들의 메시야가 다시 오시지 않으면 이슬람교로 개종하겠다고 모하메드 앞에서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회교도의 통치자들은 유대인에게 이슬람교로 개종하든지 아니면 막대한 금액을 국가에 바치라고 명령했다.한편 스페인에서의 유대인의 고민은 수 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한 예를 들면 교황의 후원을 받은 자들은 강제로 유대인의 겉옷에 노란 뺏지를 달게 하여 유대인임을 표시하게 하였다. 그리스도인과 분리시켜 따로 떨어진 구역에서 살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의사를 찾아가는 것을 금하였다.1218년 유대인으로 하여금 유대인임을 표시하는 뺏지를 달도록 정하는 법령이 교회의 후원하에 영국에서도 실시되었고 1299년에는 프랑스에서, 1279년에는 헝가리에도 공포되었다.1235년, 독일에서는 미궁에 빠진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거기에 대한 혐의가 유대인에게 돌아갔다. 뒤이어 유대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1243년, 베를린 근처의 도시 벨리에서 살고 있던 유대인 전부가 산 채로 불에 타서 죽었다. 이러한 무분별한 횡포는 간헐적으로 되살아났다. 1298년에는 성찬식에 쓰이는 떡을 더럽혔다는 혐의로 뢰팅겐시에 거주하던 유대인 전부가 화형당했다. 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후 약 반 년이 채 못 되어서 박해는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하여 140개 이상의 유대인의 집단 거주지가 흔적을 감추었다.1144년, 영국 노르위치에 사는 윌리엄이란 젊은이가 피살체로 발견되었다. 그 혐의는 유대인에게로 돌아갔다. 십자군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유대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십자군에게 포악한 짓을 하도록 재정적 뒷받침을 한 셈이었다. 그 당시는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리대금업을 금했기 때문에 자연히 유대인들이 돈을 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돈을 빌었던 십자군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자 그들에게 돈을 빌려 준 유대인의 재산을 탐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앙심은 1257년에서 1267년 사이에 생겨났다. 그리고 그동안 유대인의 인구가 많이 늘어났다. 이 또한 방관할 수 없는 문제로 등장했다. 이와 같은 배경하에서 에드워드 1세는 영국 거주 유대인들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영국을 떠나 도버 해협을 건너다가 많은 유대인들이 익사했다.프랑스에 상륙한 유대인들은 생활의 기반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자 이번에는 필립 공정제(Philip the Fain)(1306)가 그들을 전부 투옥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몸에 걸친 의복을 제외하고는 재산을 몰수해 버렸다. 그리고 겨우 하루분의 식량을 지급한 후 10만명의 유대인들을 프랑스 밖으로 추방했다.유대인들은 중세기 동안 미움과 질시 속에서 유럽 전역을 전전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언제나 고달픈 손발을 쉬기 위하여 평화로운 땅을 찾았지만 발을 내디딘 땅은 곧 꺼지고 그들의 무덤이 되고 마는 비극이 되풀이되었다.유대인에게 아마도 영원한 조국을 세워야 한다는 희망의 씨가 그들의 가슴 속에 뿌려진 것은 이 때가 아닌가 싶다. 이 무렵에 살았던 솔로몬 이든 가비롤(Solomon Idn Gabirol)은 어릴 때 양친을 잃고 빈곤 속에서 자랐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우리는 기약도 없이 정처없이 흘러다닌다.우리는 쇠사슬에 묶여 더욱 쓸쓸하다. 그러나 어디든지 가서 힘차게 외치리라.우리 주의 영광이 여기에 있다고.
그리고 바로 그 당시 가장 위대한 유럽의 시인이라고 생각되는 제후다 할레비(Jehuda Halevi)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오! 세계의 도시 예루살렘이여!자랑스러운 광채로 찬란하구나.오! 만약 내게 독수리 날개가 있다면서슴지 않고 그대에게 날아가내 눈물을 뿌려 그대의 먼지를 씻기련만……마음은 동쪽에 가 있건만이 몸은 서쪽에 머물고 있네.
대환난의 전주곡1889년 4월 20일, 저녁 6시 반, 도이칠란드의 바바리아의 작은 도시 '브라우나우'의 초라한 여인숙에서 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였다. 그 이름은 장차 수백만의 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공포와 죽음을 가져다 줄 자의 이름이었다.히틀러의 처음 희망은 정치가가 아니었고 비인의 미술 학교에 들어가서 장차 건축 기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입학 시험에 떨어졌고 날품팔이와 무명의 화가로서 5년간을 헛되이 보냈다. 그는 과거에 유명했던 대작의 모조품을 만들거나 그것을 솥에 넣고 구워서 약간 갈색을 띄게 하여 고대의 명화처럼 고상하게 보이게 하는 좋지 못한 손장난을 배웠다.그는 1911년 비인에서 유대인에 대하여 큰 원한을 품기 시작했다. 그 당시 비인에서 반 유대주의 사상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상은 멀지 않아 전 세계에 번질 것이 틀림 없었다. 히틀러는 그 당시 이미 아리안족을 파괴하고, 복종시키려는 유대인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믿고 있었다. 또 그는 그 당시 여자의 나체화라든가 경박한 재즈 음악 그리고 음란한 그림과 근로 대중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 같은 사악한 것들은 모두 유대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히틀러의 집권제 1차 세계 대전에 패한 독일 제국엔 불안한 공백기가 시작되었다. 기구한 환경 속에서 헤메던 아돌프 히틀러가 그 공백을 메꿀 운명을 띄게 되었다. 그는 독일 노동당에 입당하여 곧 선전술을 익혔다. 그가 배운 당의 선전술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들어 있었다.
대중이 사물을 진실되게 인식하는 능력은 지극히 미약하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력도 매우 보잘 것 없다. 또 그들은 무엇이든지 재빨리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거짓말을 할 때는 마음 놓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해라.
히틀러와 국가 사회주의노동당(나찌스)은 그 세력이 차츰 커져 1930년에는 독일의 정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독일 정부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부채를 안고 있었다. 노동자와 농민의 앞날은 암담했다. 그들은 저당을 잡히고 빌어 온 돈의 이자마저도 갚지 못해 보금자리가 날아가 버리는 것을 멀거니 보고만 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6백만 이상의 근로자들이 직장이 없어서 거리를 배회하는 상태였다.그런 상황하에서 눈치 빠른 나찌스당의 기민한 움직임 때문에 힌텐부르크 대통령은 아돌프 히틀러를 수상으로 임명하는 것만이 당시의 위기에서 독일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는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를 수상에 임명했다. 당시의 사회 상황으로 볼 때 독일 군대는 오직 히틀러만이 무력해진 독일의 군사력을 회복하여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산업 자본가와 기업인들도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항해서 그들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히틀러밖에는 없다고 믿었다. 일반 대중은 히틀러가 언젠가는 경제적인 혼란에서 독일을 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독일을 다시 강대국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한편 독일의 정치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세밀하게 살핀 히틀러는 국민들이 공산주의라는 유령에 겁을 집어 먹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히틀러는 독일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하여 새로운 법안을 작성하여 힌텐부르크 대통령 앞에 내밀었다. 그 법안은 국가 민족 보위법이었고 힌텐부르크 대통령은 이에 서명했다. 그 내용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력행위 억제책으로 가득 차 있었다.
히틀러의 기만술히틀러가 새로 만들어 낸 국가 보위법은 바이마르 헌법이 보장하던 개인의 자유를 박탈해 버렸다. 그것은 히틀러에게 국가 권력의 전부를 넘겨 주는 제일보가 되었다.그 해 3월 4일, 히틀러는 그 법의 반포를 축하하면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친애하는 독일 국민 여러분, 다시 한번 당당하게 머리를 드십시오. 여러분은 이제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노예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다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떳떳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도우심을 받아서 다시 한번 참된 독일 국민이 되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던 히틀러라도 이런 경우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그 분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심한 역설이 아닐 수 없었다. 히틀러가 만들어 낸 바로 그 법 때문에 독일 국민은 자유를 송두리째 상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국민을 향한 히틀러의 연설은 "머리를 높이 들라. 이제는 노예가 아니다.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났다"는 등의 거짓말로 가득 차 있었으니 실로 어이가 없다. 히틀러는 다시 한번 엄청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는 기교를 익히게 되었다.그 후 히틀러는 의회에서 수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총통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수권법은 4년간 국회의 동의 없이 법을 제정, 공포,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입법부에서 행정부로 넘겨 주는 것을 규정한 법이었다.이 법은 헌법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국민을 억압할 수도 있고 외국과 마음대로 조약을 맺을 수도 있는 권한을 히틀러에게 넘겨 주게 했다. 히틀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재빨리 해치웠다. 그는 즉시 반대당을 제거해 버렸다.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크게 놀란 나머지 감히 그와 맞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히틀러의 수족이었던 괴링과 히믈러는 계획의 착수에 앞서 착실한 선전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히틀러는 개신교의 목사들에 대해서 호감을 갖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목사라는 자들은 보잘것없는 소인배들이다. 그들은 개처럼 순종한다. 목사들은 걸핏하면 하나님을 들먹이고 예수를 들추지만 그것은 허울뿐이고 사실 그들에겐 참다운 신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또 그들은 빈번히 천국을 운운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늘 나라는 고사하고 땅 위에 로마 제국과 같은 든든한 기반도, 위치도, 지위도 없다. 한 마디로 그들은 말뿐이고 실속은 전연 없는 자들이다.
히틀러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인들이 창조한 문화는 한 가지도 없다. 창조는커녕 수많은 찬란한 인류의 문화를 파괴히 버렸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우리 유대인이 창조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전부가 훔쳐 온 것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얼마나 미워했던지 그가 집권하고 있는 동안에 유럽에서 6백 만의 유대인들을 죽일 정도였다.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의 조직적인 폭력처음에는 헐만 괴링이 조직한 게쉬타포가 당의 폭력 조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양계업자겸 비료 판매원이었던 하인리히 히믈러가 S.S.라고 하는 별도의 비밀 경찰을 지휘하기에 이르자 이 둘은 폭력 기관의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1933년의 말까지 50여 개의 유대인 수용소가 생겨났다. 그리고 히믈러의 S.S.는 게쉬타포를 흡수해서 하나의 통합된 비밀 경찰 기구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1935년 9월에 공포된 뉴른베르크 법에 따라서 유대인에 대한 첫 번째의 철퇴가 내렸다. 그 법령은 유대인의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 다음에 나온 법령은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의 혼인이나 성교를 엄금하였고 어기는 자에게는 무거운 형벌을 내리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더구나 1937년에는 억압이 가중되어 유대인들에게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고 말았다.유대인들은 투표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출판물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할 수도 없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작가나, 화가, 음악가로서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어떤 상점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음식이나 약을 팔지 않았다.그래서 1937년 한 해에 2만 3천 명의 유대인들이 독일을 떠났다. 1933년부터 그해 말까지 독일을 떠난 유대인의 수는 12만 9천 명에 달했다. 그것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된 1933년에 독일에 거주하던 유대인 총수의 1/4에 해당하는 수였다. 그런데 다음 해인 1938년에 접어들자 유대인이 독일을 떠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1938년 6월 9일, 히틀러는 뮌헨의 유대교 대회당을 파괴해 버렸다. 잇달아 다른 곳에 있던 유대교 회당들도 파괴되었다. 1938년에 접어들자 히틀러의 하수인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유대인을 위협해서, 재산을 버리고 알몸만이라도 독일에서 빠져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해 나갔다. 그러다가 1942년에는 유대인을 멸종시키기로 방침을 굳혔다.아돌프 아이히만, 라인할드 하이드리히, 하인리히 히믈러 및 그외 당 간부의 공동 지휘하에 노동 능력이 있는 유대인은 강제 수용소로 보내고 나머지는 모두 죽이는 세부 계획안이 작성되었다.아우슈비츠, 벨센, 부헨발드, 라벤스브르크 등등의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안네 프랑크의 일기' 코리 텐 붐의 '숨을 장소' 등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죽음 그리고 시대의 절망과 비애를 그림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 나찌스는 집단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 수많은 유대인의 팔에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수인 일련 번호를 새겨 넣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그 때의 문신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질식하여 숨지고 그 시체가 화장터의 잿더미로 사라졌다. 그런 식의 죽음을 면한 자라 할지라도 위에 말한 것과 같은 말 못할 비애를 느껴야만 했다. 그런 끔찍한 사건은 겨우 50년 전에 일어났었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처참한 사건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찌스 일당의 가공할 만한 만행을 우리들은 거의 잊어 가고 있다.
최대의 비극우리가 그 때의 비극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를 크게 놀라게 하는 것은, 이와 같은 끔찍한 살해 행위가 감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은 무관심하게 그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느라고 보고도 못본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그린 문학 작품 가운데서 가장 무시무시한 것 중 하나는 독일의 한 토목 기사가 1942년 10월 5일에 쓴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방의 두브노 겟토(유대인 거주지)에서 유대인을 전멸시키는 광경을 목격했다.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 때까지 매일 1천 5백 명 가량이 집단 살해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5천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학살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무장한 우크라이나 지방의 민병들이 독일 비밀 경찰의 감독하에 트럭에서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노란 표식을 가슴과 등에 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유대인임을 곧 알 수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은 채찍을 가진 비밀 경찰의 지시에 따라서 옷과 모자, 구두 등을 벗었다. 그 자리에서는 나이와 성(性)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지정된 장소에 구두는 구두대로, 겉옷은 겉옷대로 그리고 속옷은 속옷대로 분류해서 벗어 두었다. 그 때 나는 8백 내지 1천 켤레의 구두가 땅에 쌓이는 것을 보았다.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고 말없이 옷을 벗고 가족 단위로 둘러서서 서로 입을 맞추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들은 채찍을 들고 자신들이 묻힐 길다란 구덩이 옆에 서 있는 비밀 경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나는 그 구덩이 가까운 곳에서 약 15분간 서 있었지만 불평을 터뜨리거나 살려달가고 애걸복걸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머리가 눈처럼 흰 한 할머니는 거의 첫 돌이 지난 듯한 아이를 안고 그 아이에게 노래를 들려주며 가볍게 등을 두들겨 주기도 했다. 어떤 부부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또 어떤 아버지는 약 10세쯤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그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아이는 억지로 눈물을 참는 것이었다. 이윽고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바로 그 순간 구덩이 가에 서 있던 비밀 경찰이 그의 동료를 보고 무엇인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전달을 받은 그의 동료는 유대인들에게 20명씩 나누어 흙더미 뒤로 가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 20명 가운데는 위에서 내가 말한 그 부부도 끼어 있었다. 이윽고 나는 도보로 그 흙더미의 둘레를 돌다가 세상에서는 볼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무덤과 마주쳤다. 구덩이에 들어선 사람들은 콩나물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서로 몸을 비벼대면서 빽빽하게 서 있었는데 그들의 몸집은 안보이고 머리와 어깨만이 보였다. 그들은 거의 전부가 머리에 총탄을 얻어 맞고 어깨 위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총상을 입었지만 죽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두 팔을 올리고 머리를 들기도 했다. 구덩이는 벌써 삼분의 이 정도 메꾸어졌다. 내 짐작으로 그 때 구덩이 속에 있던 사람들은 약 1천 명 정도 되어 보였다.나는 총을 쏜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는 비밀 경찰 대원이었다. 그는 구덩이의 맨 끝 가장 자리에 앉아 구덩이 아래로 두 다리를 뻗은 채 무릅 위에 기관총을 얹어 놓고는 여유 있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이윽고 또 다른 사람들이 벌거벗고 구덩이의 진흙벽을 파서 만든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는 구덩이의 바닥에 시체가 되어 빽빽하게 누워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비밀 경찰이 지시하는 장소에까지 갔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죽었거나 크게 상처입은 사람들의 앞에 앉았다. 그 중에는 아직도 죽지 않고 신음하는 사람을 보고 다가가서 끌어안고 고통을 달래어 주는 사람도 있었다. 또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며 위로하는 이도 있었다.잠시 후 나는 고막을 찢는 듯한 한 줄기 총성을 들었다.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몸뚱이가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경련을 일으켜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들의 목에서는 피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다. 같은 운명을 맞이할 사람들이 또 떼를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도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서는 목전에서 화를 입은 사람들 앞에 줄지어 앉았고 총탄은 그들 위에 또 쏟아졌다. 내가 구덩이에서 물러났을 때 나는 사람들을 가득히 싣고 막 도착한 또 다른 트럭을 보았다. 그런데 이번에 도착한 차에 실린 사람 가운데는 병약자들이 끼여 있었다. 보기에도 흉할 정도로 메마른 다리를 드러낸 한 여자는 자기 힘으로 옷을 벗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먼저 발가벗은 두 사람이 그 여자를 붙잡고 다른 한 사람이 그녀의 옷을 벗기는 것이었다.
영국군 부대가 벨센 수용소를 점령했을 때 그들은 2만 8천명의 여자와 1만 2천명의 남자 그리고 매장되지 않은 채 유기된 1만 3천구의 시체를 발견했다. 생존자 중 1만 3천 명이 며칠이 못 가서 영양 실조로 죽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불과 2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독일 군사 학교의 식량 창고에는 8백 톤의 식량과 하루에 6만개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제빵소가 있었다.1945년 4월 베를린의 한 방카에서 히틀러는 그의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불에 타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리하여 그 독일인의 꿈은 악몽으로 끝이 났다. 그간의 세월은 유대인에게는 실로 악몽이었다. 또한 하늘로부터는 연일 폭탄 세례를 받고 동쪽에서 물밀 듯이 들어오는 소련군의 포화에 고통을 받아 오던 수백만의 독일인들에게도 어김없는 악몽이었다.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12년간, 유럽은 유대인의 커다란 공동 묘지가 되었다. 유대인의 시체는 이름 없는 무덤 속에서 재로 흩어져 버렸다. 6백만의 유대인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그러나 세계는 그것을 쉽게 잊어 버렸다.(이상은 살렘 키르반 저, 이스라엘 최후의 날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선지자들만이 예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예언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않고 배척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장차 당할 일을 생각하시고 눈물까지 흘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3:37~39)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복음 21:20~24)
이렇게 예언하시며 예수님은 그 말씀 속에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게 될 것이라고 기한을 정해 놓았습니다. 그 이방인의 때의 시작은 언제이며 끝은 언제일까요? 이방인의 때는 B.C. 600년경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 감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언제나 이방의 세력에 의해 짓밟혀 왔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짓밟힘은 언제 끝이 날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이 지상에 재림하심으로써 끝이 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한번 더 세계의 전쟁터가 되어 이방인들의 말발굽 밑에서 짓밟히는 최후의 전쟁이 있을 때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민족이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1967년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주권하에 들어왔습니다. 1948년 해방이 된 후 중동 전쟁이 여러번 있었는데 그것은 독립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일어난 아랍 진영의 항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6일 전쟁 전까지는 이스라엘 땅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으나 6일 전쟁 때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아직 회교 구역으로서 이방 종교의 중심지가 되어 있습니다. 이 회교 사원이 철거되어야만 예루살렘은 완전히 이스라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에 대한 수천 년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다 성취되었으며 현재도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10. 이스라엘 회복을 통해서 본 성경의 사실
두 종류의 나무2천 년 간이나 나라도 없이 세계에 흩어져 학대받던 유대인들이 이제 나라를 회복해서 버젓이 독립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적같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독립은 이미 수천 년 전에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사실입니다.2차 대전 후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계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민족들이 독립을 했는데 특별히 이스라엘의 회복이라고 해서 무엇이 그리 다를 바가 있는가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차후에 말하기로 하고 그 회복의 양상과 예언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누가복음 21:29~31)
여기에 분명히 비유라고 하시면서 두 종류의 나무를 예로 들었습니다. 낙엽수는 겨울이 되면 거의 죽은 모습을 하고 있다가, 봄이 되면 파란 싹을 내어 살아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입증해 보입니다. 모든 나무 중에는 무궁화도 포함됩니다. 무궁화는 물론 한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한국도 나무 중의 하나로서 겨울을 거쳐야 했으니 35년간의 일제 압박 아래 거의 죽은 것과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방과 함께 독립을 해서 싹이 나왔습니다.2차 대전 전만 해도 이 세상에는 독립 국가가 전체적으로 60나라 정도뿐이었으나 2차 대전 후 많은 나라가 독립을 해서 지금은 170여 개 국이나 됩니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만 해도 160여 개 국가가 되고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상당 수 있습니다. 모든 나무에 싹이 난다는 것은 많은 나라가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화과 나무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나무와 별도로 무화과라는 한 나무의 이름을 지적하셨습니다.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으로 선민의 나라이기에 그 나라만 따로 모든 나무 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실례를 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예레미아 24:5)
모든 나라 중에 이스라엘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민족은 세계 여러 곳으로 이산되는 일이 없이 타민족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독립을 얻었으나 이스라엘은 온 세계로 흩어져서 나라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에서 독립했습니다.우리 민족이 만일 2천 년 전에 흩어지고 없어졌다면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것이 사실이 되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고 UN에 가입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고 하셨으니 이러한 사실은 세상의 끝과 하나님의 목적하시는 나라가 임박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언이 우리 앞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2600년 전의 예언들하나님께서는 이미 2600년 전에 이스라엘의 이산과 회복에 대해 여러 모양으로 예언한 사실이 있습니다. 2600년 전이라면 우리나라의 고조선보다도 훨씬 전인 우리 나라의 상고 시대에 해당하는 때입니다. 그 시대에 이 세상의 장래에 대해 예언을 해서 그대로 된다는 것은 이 역사를 경영해 가시는 주인의 말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예레미아의 예언"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 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 (예레미야 30:1~3, 8~9)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기록된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 말씀이 현실로 성취되는 것을 눈으로 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예레미야는, 장차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돌이킬 때가 오는데, 그 때가 오면 그들은 하나님이 그 열조,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시고 약속하신 그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2천 년 전에 이미 잃은 땅으로서, 그동안 아랍 민족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리작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이 흩어져 각국에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약 2천 년간 세계 각처에서 노예 생활로 묶여 있던 그 멍에가 꺽여지고 줄이 끊어진다고 한 그 예언은 문자 그대로 사실이 되었습니다.
회복의 근세적 태동이스라엘의 회복이 성취되기 시작한 것은 근세 역사의 시작과 때를 같이 합니다. 근세로 들어오면서부터 그들에게는 여러 방면으로부터 그러한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창시자 칼 막스나 불란서 혁명에 영향을 끼친 민약론의 저자 루소도 유대계의 한 사람으로서, 결과적으로 유대 민족 해방을 위한 활동의 일익을 담당했던 것입니다. 혁명 사상이 유대 민족 해방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페르미(원자탄 제조한 미국의 과학자) 교수 등은 유대인이었으며, 미국이나 소련, 그리고 구미 과학자들의 3분의 2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예술인,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치인들 중의 상당수가 유대인인 것입니다.유대인들은 1천 9백여 년 동안 토지 소유권을 가질 수가 없었고, 근세 역사 이전에는 정치 행정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히 장사를 많이 하게 되었으므로 장사에는 아주 세련된 수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이 많은 부(富)를 축적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세계 정복의 꿈을 돈으로써 이룩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유대인 단체 중에 '프리메이슨(Free mason)'이라는 비밀 조직이 있는데, 그 조직은 많은 이방인들도 회원으로 가지고 있다 합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수많은 클럽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러한 클럽들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그들의 세계 정복의 강령인 「시온 의정서」에는 돈으로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내용의 조항들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히틀러도 그들 '프리메이슨'의 「시온 의정서」를 읽고, 유대인 말살 정책을 세웠다고 합니다.이처럼 그들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호 카네기, 록펠러, 그리이스의 오나시스, 영국과 불란서의 로스 챠일드 5형제 등이 모두 유대인들이며, 미국의 경제계를 주름잡고 있는 것도 역시 유대인들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의 석유 메이저도 거의가 다 유대인들 것이며, 또한 '워싱톤 포스트'지나 '뉴욕 타임즈' 등 굴지의 언론 기관이 유대인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론에 가하는 압력도 막강하여,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존슨이나 닉슨 대통령같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지 못하면 정치를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미국의 정치 풍토인 것입니다. 그런데 카터는 그의 선거 공약에서 이스라엘을 보호한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이처럼 유대인들은 다각적인 방면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미리 짜여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국토 회복에의 강렬한 의지는, 그들이 이방의 세계에서 억눌리고, 학살당하고, 노예 생활을 하는 중에 독립된 국가를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의 실마리가 되었고, 또한 투쟁심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시오니즘1894년 프랑스 파리의 어느 광장에서는, 알프레드 드레퓌스라는 육군 대위의 추방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간첩 활동을 한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장군들의 계략에 의해서 누명을 쓰고 축출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상당히 유명했던 사건으로서, 오랫동안 프랑스 정계와 군부를 뒤흔들었습니다. 후에 그는 마침내 무죄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 추방식을 끝까지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신문기자이며 극작가, 사회평론가, 그리고 의사이며 법률가이기도 한 데오도르 헤르뽩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도 또한 유대인이었습니다.군중들은 드레퓌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계급장을 뜯어 내 팽개치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유대인을 죽여라. 유대인은 배신자다"라고 고함을 치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온갖 수모를 받으면서도 "나의 조국은 프랑스다. 프랑스 만세!"라고 외쳤으나, 군중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헤르뽩의 마음속에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만의 나라가 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 올랐고, 그는 후에 '유대 국가론'이란 책을 저술하여, 유대인은 시온으로 돌아가서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가 청년들을 찾아 다니면서 설득하기 시작하자 많은 청년들이 이에 가담했으며, 그들은 자신들을 '호배브 시온'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시온을 사랑하는 아들'이란 히브리 말입니다. 그 운동이 계속 진행되자, 헤르뽩은 청년들을 모집해서 옛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 개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고생이 있었으나, 그들은 마침내 기초를 닦어 놓게 되었습니다.이와 같은 일은 인간의 뜻에 의해서 이룩된 것 같으나, 실상은 수천 년 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을 따름인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어느 날 독일인 한 사람이 저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함께 성경과 이스라엘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이사야 31장 5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고 한 말씀이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성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 당시는 터키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을 때인데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아무리 공격해도 예루살렘은 두텁고 높은 성으로 둘려 있어 쉽게 함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공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총을 쏘아 대는 날아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곧 비행기였습니다. 그 비행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진 비행기로서 영국에서 만들어져 그 전투에 투입된 것이었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지금까지 비행기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총을 쏘면서 날아오는 그 비행기를 본 순간 겁들을 집어 먹고 도망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비행기를 타고 갔던 군인은 알렌비라는 장군인데, 그 장군은 바로 유대인이었습니다.제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보니 텔아비브의 최고 중심가가 알렌비 거리였습니다. 성경 속의 예언은 이렇게 정확하게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2600년 전에 어떻게 새가 날개치는 것같이 넘어와서 구원한다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해가 바로 1917년이며 그 전쟁에서 영국은 이스라엘의 위임 통치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 유명한 발포어 선언이 있었던 해로 영국의 외무 장관이던 발포어는,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말씀이 문자 그대로 성취된 해였습니다.
북방에 내린 명령이스라엘 민족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이방 민족으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히틀러에 의해 6백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학살되었습니다. 아직도 세계 각처에는 1천여만 명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 중 제일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미국이며 남미 등지에도 상당한 수가 있었으나 많이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특히 중동 지역인 이란, 이라크, 이집트, 예멘,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거의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떤 소식에 의하면 이란에는 아직도 상당한 숫자가 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B.C. 600년 경 바벨론 포로 당시 번창해진 유대인이라고 합니다.그런데 특기할 것은, 소련에도 유대인들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나치스들의 박해를 피해 간 사람도 있으나, 러시아 혁명의 주동 인물들이 거의 유대인이고 보면 당시에도 상당한 수의 유대인이 있었으며, 그 혁명이 유대인들의 해방 운동이었기 때문에 혁명 후에도 많이 몰려 갔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2차 대전 후 소련이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과학자들을 많이 데리고 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런데 해방 이후에 세계 각처에 있던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옛 땅으로 돌아간 데 반하여 소련에 있는 유대인들만은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은 이스라엘과는 적대 관계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적대국으로서 막대한 석유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아랍 진영의 눈치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십여 년 전에 소련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이민 열차가 한 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차가 오스트리아를 통과할 때 아랍 게릴라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으며, 이때 아랍 진영은 소련에 항의를 했다고도 합니다.
폴란드 노조 사건의 배후세상에는 단순히 폴란드 노동자들의 항거 운동으로 알려진 폴란드 노조 사건의 배후에는 유대인들의 음모가 숨어 있었습니다. 폴란드는 우리 나라와는 정반대로 국토의 70퍼센트가 평야로서 공산권 중에서는 가장 식량이 풍부한 나라였습니다. 그러한 나라였던 폴란드가 빵이 없어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데모를 하고 소련이 개입할 만큼 심각한 사태로까지 번졌던 것입니다.소련은 이상 기온 때문에 밀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 지역에 흉년이 들어 1972년에는 7억 불 상당의 미국 밀을 수입했는데, 당시 미국 곡물 메이저들은 소련에게 곡물을 팔아주는 대가로 어느 정도의 유대인들을 내어 보내라는 조건을 붙였던 것입니다. 소련은 하는 수 없이 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런데 그 유대인들을 어느 나라로 보낸다는 약속은 없었기 때문에 소련에서는상당히 많은 유대인들을 폴란드로 내어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유대인들이 폴란드에 들어가서 농사를 망치게 하고 노동 운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지략은 세계 어느 민족도 당할 수 없습니다. 현재도 전세계적으로 식량이 모자라는 국가는 대체로 공산권에 있는 나라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소련은 자연히 미국에서 식량을 사 가야 하고, 이를 이용해 미국 곡물 메이저들은 소련에 압력을 넣어 유대인들을 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폴란드 문제는 그러한 배경에서 생겨난 하나의 사건입니다.이러한 일들에 대해 가만히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이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방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방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방에게 이르기를 놓으라 남방에게 이르기를 구류하지 말라 내 아들들을 원방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라" (이사야 43:5~6)
특히 북방에게는 "놓으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으므로 놓기 싫어도 놓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바다의 풍부필자가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사해의 이스라엘 쪽 연안을 끼고 관통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여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해는 이스라엘만의 것은 아니며 요르단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곳은 지구상에서 제일 낮은 곳이라고 합니다. 물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나가지는 않았으며 또한 계속 증발이 되어 물이 불어나지도 않습니다. 염분이 너무 많아서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도 가라앉지를 않고, 물에서 나오면 몸에는 이상한 기름 같은 것이 한꺼풀 덮여 민물을 끼얹어도 잘 씻겨지지 않습니다. 그 물질을 염화칼륨이라고 하는 것으로서 비료 성분이 있어 식량을 만들 수도 있고 핵무기를 만드는 원료도 된다고 합니다. 또한 사해에는 여러 가지 귀한 물질들이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해 아래쪽에 소금 공장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혹시 사해를 개발하는 다용도 공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워 올 것이라 그 때에 네가 보고 희색을 발하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이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이사야 60:4~5)
이 말씀 중에 '바다의 풍부'란 말은 바로 사해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련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려고 노리는 목표 중의 하나가 바로 사해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구름같이, 비둘기같이이스라엘의 국토는 대륙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육로로 입국하는 길이 없습니다. 3면은 적국인 아랍 국가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나머지 한 면은 바다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면 바다나 공중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방과 더불어 자기의 옛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대부분 비행기로 들어갔습니다. 예멘에서는 2천여 명이 이스라엘에서 보낸 비행기로 타고 갔고, 이라크에서 5만여 명이 전부 비행기로 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 돌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몸이 크고 뚱뚱해서 정원만 타고 갔지만 이라크나 기타 아랍 진영에서 돌아가는 유대인들은 너무도 못 먹고 말라서 정원의 거의 배가 타고 갔으며, 어떤 노인은 아들이 업고 비행기에 탔는데, 텔아비브 공항에 내려 땅에 키스를 하는 즉시 죽었다고 합니다.성경에는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 오는 것같이 날아 오는 자들이 누구뇨"(이사야 60:8)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2600년 전에 사람이 날아온다는 것을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의 상식으로나 추리로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관장하시고 경영해 나가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에스겔의 예언― 국토의 회복1900여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을 떠난 후 그 땅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3500년 전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켜 팔레스타인에 이주케 할 당시에는 그 땅이 얼마나 비옥했던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 가까이에 이르러 미리 그 땅에 정탐군을 보냈을 때, 그들은 돌아와 말하기를 가나안 땅에서는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메고 걸어가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비옥한 땅도 그들이 하나님께 대항하고 죄를 지으면 그 땅을 이방인에게 주어서 황무지로 만들어 버린다고 3500년 전에 예언을 하셨는데, 그때로부터 1500년 후인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은 온 세계에 흩어져 버리고 이방인이 그곳에 들어와 살게 되어, 그 후 1900년간 그곳은 완전히 사막으로 변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되어 다시 그 땅이 옥토로 변할 것도 2000여 년 전에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는데, 현재 바로 그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이 너희를 황무케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서 너희로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거리와 백성의 비방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 황무한 사막들과 사면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투기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 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투기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욕을 당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이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 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에스겔 36:1~9)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토록 천대받던 이스라엘 땅이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고 한 대로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는 여러 가지 과실이 생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1967년경에만 해도 1억 불 어치의 과일 수출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귤의 대부분은 모두 이스라엘 산입니다. 몇 년 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들판의 귤밭에서 귤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리브 과수원이 넓게 가꾸어져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들이 회복이 되면서, 황무지가 개간이 되고 과실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에스겔 36:33~36)
이 말씀에도 보면,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땅이 에덴 동산같이 된다고 했는데, 현재 바로 그대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토지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고 다만 집단적으로 농사를 짓는 키브츠 제도가 있습니다. 필자도 키브츠에 가사 하룻밤 잔 적이 있는데, 울창하게 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집을 짓고, 농장에서는 각종 과일, 채소, 곡물이 자라고 있었으며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숲 사이에는 공장을 지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그리고 북쪽으로 가면 시리아와 레바논 경계가 되어 있는 곳에 헐몬산이 있는데, 9월인데도 해발 3천 미터 가까이 되는 산 위에는 눈이 쌓여 있고 내려오는 도중에 큰 폭포도 보았습니다. 거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강을 이루어 갈릴리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큰 파이프에 물이 연결되어 이스라엘 전 국토를 적시고 물을 공급하는 현장도 보았습니다. 비는 4월부터 10월말까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으나 수증기를 휘날리면서 들판을 적시는 스프링쿨러 시설은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옛적에 성경에 말씀해 놓으신 대로, 사실로써 눈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분의 청사진과 같은 것이며, 하나님은 역사의 경영주이십니다.
뼈들에게 예언하라에스겔 37장의 이야기를 실례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셔서 골짜기에 있는 말라빠진 뼈들을 향하여 예언을 하라고 하시므로 그 말씀대로 예언을 했더니, 그 뼈들이 서로 엉켜 붙고 생기가 들어가서 큰 군대를 이루었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방 세계 사람들의 마음이 죽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수십만 명이 모인 5·16광장에서 어떤 강사가 이 말씀을 읽으며 설명하는 가운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에스겔 37장의 말씀은 아주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그 본문 속에 밝혀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교인들은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37장 11절에 보면,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과연 이스라엘은 온 세상에 흩어져서 죽은 상태였고, 뼈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소망도 즐거움도 없이 멸망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세계 도처에서 미움받는 민족이었고, 쫓겨 다니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에스겔 37장 21~22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간 바 열국에서 취하며 그 사면에서 모아서 그 고토로 돌아가게 하고 그 땅 이스라엘 모슨 산에서 그들로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이스라엘은 옛날에 남쪽의 유대와 북쪽의 이스라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회복 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은 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11. 마지막 때의 세계
소련의 이스라엘 침공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되리라는 것이 정치가나 전략가들의 지배적인 여론인 것 같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함대가 지중해에서 눈치 작전을 펴고 있는가 하면, 페르샤만에도 양대 세력이 집결해 있습니다. 그곳이 세계 전략의 요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랍 진영도 강·온 양 파로 나뉘어, 강경파는 소련의 지원을, 온건파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는 미국 군대가, 리비아, 이디오피아, 예멘, 시리아 등지에는 소련군이 무장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감돌고 있는 곳이 오늘날의 중동입니다.5, 6년 전에 이란에서는 갑자기 회교 혁명이 일어나 친미 정책을 쓰던 팔레비 왕권이 무너지고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미국과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었고, 이디오피아는 셀라시에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었으나 이십 여년 전에 혁명이 일어나 셀라시에 황제가 축출되고 친소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또 리비아의 카다피 혁명위원회 위원장은 공산주의자는 아니나 이스라엘과 밀착되어 있는 미국과는 철저히 적대 성향을 띠어 수십척의 소련 함대를 리비아 항구에 정박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특히 시리아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네 차례나 패배했으나 현재도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후견인격인 소련에 의해 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점령해서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저의는 장차 이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략으로 생각됩니다.중동 지역에 이러한 전쟁 무드가 형성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동에 있는 에너지 자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소 중 어느 한편이 에너지 보고인 중동을 점령한다면 다른 한 편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또 중동은 3대륙을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이기도 합니다.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네가 네 고토 극한 북방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떼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 구름이 땅에 덮임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 (에스겔 38:14~16)
이 세상 끝날에 곡이라는 세력이 이스라엘을 치러 온다는 내용입니다. 곡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날이 끝날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북쪽의 나라라고 했으니 바로 소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마곡 땅에 있는 곡 곧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그들과 함께 한 바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고멜과 그 모든 떼와 극한 북방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 내리라 너는 스스로 예비하되 너와 네게 모인 무리들이 다 스스로 예비하고 너는 그들의 대장이 될지어다 여러날 후 곧 말년에 네가 명령을 받고 그 땅 곧 오래 황무하였던 이스라엘 산에 이르리니 그 땅 백성은 칼을 벗어나서 열국에서부터 모여 들어 오며 이방에서부터 나와서 다 평안히 거하는 중이라" (에스겔 38:1~8)
여기보면 곡의 본토는 마곡인데 그것은 소련을 지칭하는 것이며 로스는 러시아, 메섹은 모스크바, 두발은 투볼스크의 옛이름들입니다. 왕의 세력이 완전한 갑옷을 입었다는 것은 완전한 군비를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현재 소련의 군세는 미국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아가리를 꿰어 끌어내신다고 되어 있으며 혼자 오는 것이 아니라 동맹군을 대동하고 오는데, 바사(페르샤), 곧 이란과 구스(이디오피아), 붓(리비아)과 고멜(동독)들을 데리고 치러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지금 이들은 준비가 거의 다 갖추어져 가고 있습니다. 오랜 제국이었던 이란과 이디오피아가 왜 이 시점에 와서 혁명에 의해 전복되고 친소화되어 가는지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왜 소련이 이스라엘을 치러 오는가, 거기에는 몇 가지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술한 대로 사해에는 무진장의 보물이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차지한다면 소련이 지니고 있는 식량 문제가 해결됩니다. 둘째는 검은 황금인 석유를 수중에 넣을 수 있게 됩니다. 소련에도 틀림없이 많은 석유가 생산되고 있으나 언젠가는 바닥이 납니다. 그래도 가장 매장량이 풍부한 곳은 중동으로,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앉아 있으면 중동은 자동적으로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은 예루살렘에 얽힌 문제가 있습니다. 호메이니는 이란 혁명 후 연설을 통해 전세계 40여 회교국은 힘을 합해서 예루살렘을 탈환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도 더없이 귀중한 곳이지만 회교도들에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곳입니다. 메카, 메디나를 비롯, 3대 회교 성지 중의 하나가 예루살렘으로, 옛날 솔로몬의 성전터를 빼앗아 알 아크샤와 오말이라는 두 사원을 세운 후 6세기 때부터 회교 신앙의 중심지가 되어 왔습니다. 예루살렘은 십자군 전쟁에 의해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지켜 온 그들의 성지입니다.그런데 이제 그것이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들어갔으니 그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에게 져 온 그들로서는 그것을 탈환할 능력이 없습니다.그것을 아는 소련은 회교국들의 비위를 맞추어 예루살렘을 탈환해 주고 아랍 국가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독차지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침공하는 길이 최상의 방법입니다.성경에는 이 사실이 2500여년 전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네 마음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나서 악한 꾀를 내어 말하기를 내가 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없이 다 평안히 거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물건을 겁탈하며 노략하리라 하고 네 손을 들어서 황무하였다가 지금 사람이 거처하는 땅과 열국 중에서 모여서 짐승과 재물을 얻고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을 치고자 할 때에" (에스겔 38:10~12)
곡(소련)의 말입니다. 물건을 겁탈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씌어 입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따로 있습니다.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 (에스겔 38:16)
이방인들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어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데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물론 39장에 있는 대로 소련의 패전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성경에는 전쟁의 결과도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을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먼 북방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너와 네 모든 떼와 너와 함께한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움키는 새와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리니 네가 빈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39:1~6)
이상과 같이 소련을 먼 북쪽에서 끌어다가 멸망시키고, 11절에서 말한대로 이스라엘 땅은 그 매장지로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거기에 끌려 온 소련 군대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 본토에도 불이 내린다고 되어 있으며 소련의 상대되는 나라, 곧 해안으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에도 불이 떨어진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멸망은 핵전쟁으로 인한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고 했는데, 마곡은 소련의 본토이며 해안으로 둘려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고 생각됩니다. 소련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일 것이며 현재 상황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소련의 공격을 받게 되면 미국이 틀림없이 가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군대들이 멸망되는 것이며 미국도 또한 핵 폭탄으 세례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시체를 장사지내는 데 7개월이 걸리며, 시체를 수색하는 순행자들이 시체를 보고 팻말을 세우면 시체를 장사하는 자들이 와서 장사하게 된다는 내용은 핵전쟁이 일어난 후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그들이 사람을 택하여 그 땅에 늘 순행하며 장사할 사람으로 더불어 지면에 남아 있는 시체를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일곱달 후에 그들이 살펴 보되 순행하는 자가 그 땅으로 통행하다가 사람의 뼈를 보면 그 곁에 표를 세워 장사하는 자로 와서 하몬곡 골짜기에 장사하게 할 것이요" (에스겔 39:14~15)
핵무기를 사용하면 방사능이 남아 있어 7개월 내지 10개월만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하며 직접 시체를 치우는 자들은 완전히 방독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이렇게 해서 소련의 이스라엘 침공은 소련의 완전 패배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전세계를 적화하려는 야망아래 유럽의 절반,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를 석권하고 공산 정권을 수출하고 있는 무신론의 세력을 하나님이 용서치 않으신다는 확실한 뜻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70주다니엘 9장 24절부터 27절까지를 보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갔을 때에 선지자 다니엘도 함께 잡혀 갔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읽고 있던 다니엘은 70년 만에 포로 생활이 끝이 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예레미야 25:12)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이 바로 다니엘서 9장의 내용입니다. 그러자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응답이 계셨는데, 그 내용이 지금 기록한 다니엘서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니엘이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장래 운명에 대한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70이레라는 것은 490년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세상 끝까지의 기한이란 뜻입니다. 에스겔 4장 6절에 의하면 1일이 1년 이라고 했기 때문에 7일⁓70은 490일이지만 490년으로 해석이 됩니다. 490년이 차면 이 세상의 허물과 죄가 영원히 없어지는 의로운 세상이 되고, 모든 예언이 다 성취되는 때가 오며, 예수님이 왕으로 재림하신다는 뜻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구약에 보면, 이스라엘 선지자나 민족이 제사장 또는 왕을 세울 때에는 항상 기름을 부어서 세우는데, 이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계셨을 때에는 선지자의 자격으로 계셨던 것이며,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은 제사장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하시는 것은 제사를 끝마치고 지성소에서 나오시는 것이며, 왕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즉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왕으로 오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런데 25절을 보면, 예수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이 날 때부터 70이레가 시작됩니다. 그 명령은 아닥사스다왕 이십 년 니산월 신지자 느헤미야가 왕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합니다.(느헤미야 2:1) 학자들간에 약간의 의견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성경 해석자들은 이 때가 B.C. 444년이라고 합니다. B.C. 444년부터 490년이 지나면 현재 세상은 끝이 나게 되는데, 그 사이에는 몇 가지 구별된 기간이 있습니다. 그 첫째 기간이 일곱 이레인데, 이 기간 동안 예루살렘성이 중건되었습니다. 그리고나서 62이레가 지나면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진다고 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하는 것이며,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것과 유대국이 멸망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이 예언의 말씀 중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예언은 다 이루어졌습니다. 69이레 곧 483년이 지나갈 때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그 일이 다 성취되었으나, 70이레가 차게 되려면 아직 한 이레가 부족합니다. 한 이레 곧 7년을 남겨 놓고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끝이 났으니, 언젠가 그 7년이 채워져야만 죄악 세상이 완전히 끝이 나고 의로운 세상이 오게 된다는 성경의 말씀이 응해질 것입니다.그런데 27절에 보면 그 나머지 한 이레가 다시 채워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7년이란 이스라엘의 남은 시대이며, 그 기간이 7년 환난의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7년 환난기7년 환난 기간은 이스라엘의 남은 기간 7년을 채우는 기간이며, 이방 세계가 멸망하는 때입니다.이 7년 동안에,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일들이 한꺼번에 몰아닥치게 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구 문제, 식량 위기, 공해, 자원 고갈, 지진, 자연의 변화, 질병, 극도로 약해져 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대전쟁 등등…….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그 7년 환난기를 준비해 가는 기간입니다. 이 환난은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서서히 준비되어 가면서 결정적인 때가 이르면 한 인물이 일어남으로써 시작이 될 것입니다. 다니엘서 9장 27절에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한 것은 바로 이 세상을 통치할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계 정부 운동현재 이 세계는 현재의 제도로써는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쟁, 식량, 인구 문제입니다. 인구가 팽창해감에 따라 식량 문제가 등장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힘의 우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최근에는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단일한 세계 정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미국 등지에는 사실상 아직 개간 가능한 땅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땅들을 개간하여 많은 식량을 생산하게 되면 곡가가 폭락하게 되므로 정부에서는 애써 개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세계에 정부가 하나라면 그러한 것들은 전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며 국가간의 대립도 없어질 것이므로 전쟁 또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정부에 대한 구상이 은밀히 추진되어 왔습니다.
삼각위원회삼각 위원회란 미국, 일본, 유럽이 서로 연결된 세계 정부 운동을 위한 조직체입니다.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세계 정부 운동의 본산처럼 되어 있으면서 많은 인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터 대통령도 그 중의 하나로,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에는 그들의 뒷받침이 작용했던 것이며, 그의 온건 정책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강력한 이미지가 흐려지고 미국의 영광이 퇴조하게 된 것도 전 세계가 잘 살 수 있게 되려면 미국만이 모든 것을 독점해서는 안된다는 그들의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카터 대통령은 그의 재임 기간 중 인권 정책을 강력히 밀고 나갔으며 한국에서도 미군을 철수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에는 복음주의자 등 보수주의 세력이 상당히 강해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밀었고 그는 지금 강력한 미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여러 형태의 힘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세계 정부가 수립되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의 부활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부터 범세계적인 형태의 국가는 존재해 왔으며, 그것은 인류역사를 통해 여러번 부침(浮沈)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것이 공화체제의 정부가 아니라 일인 독재체제의 세계 정부였습니다.인류의 발상지는 중동이었고 그 중심인 이스라엘을 사이에 두고 북쪽 세력과 남쪽 세력과 동쪽 세력들이 계속 지배력을 줄다리기해 왔습니다.남에는 이집트, 북에는 앗시리아, 동쪽에는 바벨론, 페르샤 등의 세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은 항상 그들이 싸우는 틈바구니에 끼여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그 만나는 장소는 언제나 현재 이스라엘의 므깃도라는 분지이며 넓은 평원이었습니다. 북쪽 세력이 남쪽을 향해 내려오다가 므깃도에서 만나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인들은 피를 흘리고 약탈을 당해야 했습니다.그러던 중에 전세계를 통일하는 한 세력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곧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 세워진 바벨론이란 나라였습니다. 얼마후에 바벨론은 메데와 페르샤(현재의 이란)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러나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나타나 세계를 통일하였고 그 후 네 나라로 갈라졌다가 네 번째로 로마 제국의 등장을 보게 되었습니다.B.C. 63년경에는 3두 정치로 로마를 이끌던 세 사람 중의 한 사람인 폼페이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유되었고 이스라엘의 운명은 로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B.C. 30년 경에는 줄리어스 시저에 의해서 로마 제국이 건설되어 전 유럽, 북 아프리카, 중동, 서부 아시아에까지 판도를 넓히게 됨으로써 대로마 제국이 형성되었습니다.그후 줄리어스 시저가 암살되고 그의 양자되는 아우구스티누스(성경에는 아구스트)가 통치권을 잡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이 바로 그때입니다.로마 제국은 앞서 나타났던 다른 제국들과는 달리 영원한 로마라는 말이 생길만큼 막강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에 번성하여 교황이 생기면서 그 권력은 제 2선으로 후퇴하게 되고 결국 로마도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영광스러웠던 로마가 부활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열 뿔 가진 짐승계시록 13장 1절에는 참으로 이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짐승이 하나 바다에서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 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13:1~8)
여기에 나오는 짐승은 참으로 이상해서 경이적인 힘을 가졌고 죽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며, 또 그의 말이 너무 매력적이고 힘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의 말에 매혹되고 마흔 두 달 곧 3년 반 동안 큰 일을 행하는데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 곧 세계를 통치하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그렇다면 이처럼 엄청난 그 세력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그 답은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다니엘 7:15~20)
이 말씀을 보면, 네 큰 짐승은 곧 네 왕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그 짐승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짐승 중 넷째 짐승으로, 그 네 짐승은 각각 첫째는 바벨론, 둘째는 페르샤, 셋째는 알렉산더의 헬라 대제국, 넷째는 로마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우상의 꿈그 거대한 우상의 시대 끝에는 열 발가락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방 세력의 제일 끝에 나타나는 10개 국가의 연합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에 관하여서는 다니엘 7장 24절에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한 몸에서 나온 열 뿔, 곧 열 왕은 부활된 로마 제국이며, 그 서막으로 지금 유럽공동체(EC)가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다니엘 7장 24절에는 또 하나의 뿔이 나온다고 했고 그 뿔이 나오면 세 왕이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이 또 하나의 뿔은 유럽공동체의 통치자이며 세 나라가 반기를 들다가 통합되거나 없어져 결국 일곱 나라로 구성된 유럽 연방제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된 로마입니다.현재도 이것은 점차 형성돼 가는 단계에 있으며 브뤼셀, 룩셈부르크 등지에는 유럽공동체 정부 청사와 국회의사당, 대법원 등이 있어 유럽 통합에 관한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유럽공동체(EC)는 1985년 까지 10개 국의 상태로 있다가 1986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입함으로써 12개 국이 되었습니다. 1992년에는 유럽 합중국이 탄생되고 단일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조약이 EC 각국에서 비준되어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거짓 선지자계시록 13장 11절에는 또 한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했는데, 그것은 계시록 16장 13절 이하에 나오는 세 존재, 곧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라고 한 그 마지막 존재입니다. 마귀의 세력도 하나님의 삼위일체처럼 삼위일체입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요한계시록 13:11~18)
그 셋째 존재는 거짓 선지자인데, 이는 이스라엘에서 나오는 유능한 존재이며, 그는 먼저 나온 짐승의 권세를 받아 이적을 행한다고 했고, 또 백성들로 하여금 먼저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나온 짐승은 칼을 맞아 죽었다가 이적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그것을 보고 세상이 그를 믿고 나라를 그에게 맡기게 되어 그는 세계의 지배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흉내를 아주 멋지게 내는 것입니다.그런데 유대인들은 한 가지 희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가 온다는 희망입니다. 구약성서의 말씀처럼 메시야가 오면 그들을 외세로부터 구원해 주고 그들로 하여금 세계 위에 군림하여 세계를 통치하게 한다는 희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메시야는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며, 예수님은 재림하셔서 사실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초림의 메시야를 믿지 않고 죽였기 때문에 재림의 메시야를 믿지 못하고 또 다시 멸망하여, 그 중 살아남은 자들만이 맞이할 수 있도록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거짓 선지자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유럽 통치자를 그리스도, 곧 메시야라고 선전하며 이적을 행해 보이면서 그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그 유럽 통치자가 곧 적그리스도인데, 이스라엘은 거짓 선지자의 인도를 받아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다가 또다시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하는 우상15절에 보면,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나는 얼마전 해외 여행에서 이 말하는 우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어떤 상점에 들어갔는데, 말을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마네킹이었습니다. 그 순간 우상이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또 어느 수퍼마앛에서 물건을 샀을 때의 일입니다. 고른 물건을 가지고 계산기 앞으로 가 물건에 표시된 바코드를 컴퓨터 계산기 유리판 쪽으로 굴러가게 하자 계산기에서 "몇 달러 몇 센트"하는 말이 나오고, 또 돈을 지불하니 거스름돈이 얼마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또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마중 나온 분의 차를 탔는데, 벨트를 매라는 말이 나오고 매고 났을 때는 또 "땡큐"하고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미국에는 말하는 로봇이 나와서 "불이야, 도둑이야"하고 외치기도 하고, 농담도 하고 바둑도 둘 수 있으며 풀도 깎고, 주인이 암호로 말하면 문을 열어 주기도 하며 수십만 톤의 배도 이제는 모두 컴퓨터 장치에 의해 조종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말하는 시계가 만들어져서 과학 제품 전시장에 나온 것을 가서 보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엄청나게 큰 말하는 우상을 만들어 예루살렘 성전 내에 세워놓고 모든 이스라엘인들을 다스릴 것이며, 또 자기 자신은 성전에 들어 앉아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3~7)
그는 불법의 사람이며 성전에 앉아서 자신을 하나님이라 한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마귀의 속성이제 마귀가 최후의 도전을 시도합니다. 그의 목적은 인간에게 경배받는 것입니다. 그가 경배받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이는 참으로 엄청난 것입니다. 아담 부부를 꾀어 성공한 마귀는 자신이 여인의 후손에 의해 멸망당할 것을 잘 알고 있으나 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경배받고자 하는 것입니다.그 마귀의 속성이나 사람의 속성은 같은 것입니다. 사람 속에는 마귀의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심겨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에서 자랑을 누려보고자 하는 정욕이 있어서, 조만간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 동안만이라도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하며 세상에서 좀더 권리 행사를 하면서 섬김을 받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로부터 받은 인간 본래의 속성입니다.마귀도 여인의 후손이 다시 오시면 자신이 멸망할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전까지만이라도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해서 자신과 같은 멸망의 운명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해 온 것이 인간 역사인 것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을 통해 경배를 받았고 그 후손들인 노아의 시대에 이르러는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서 마침내 홍수로 세상이 멸망당하는 비극을 초래했으며 그 홍수에서 살아 남은 노아의 후손들에 의해서는 또다시 바벨탑을 쌓는 죄의 역사를 쉬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그 후에도 마귀는 사람들을 통해 세계 정복의 야망을 이루어 보려는 시도를 계속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알렉산더, 시저,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왕, 이집트의 역대 왕들, 그리고 교황, 근세에는 나폴레옹, 징기스칸, 히틀러에 이어 스탈린, 모택동 등이 모두 힘에 의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다 실패했습니다. 유대인과 로마 세력의 힘을 빌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지만, 그것은 뱀의 후손, 곧 마귀의 자식들이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일로, 사실 그것은 마귀의 완전한 패배였던 것입니다. 마귀는 이제 자신이 멸망할 날이 점차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모든 악의 세력이 심판을 받고 마귀도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이 무저갱에 던져져서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예수님 당시 어떤 귀신 들린 자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이에 저희가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마태복음 8:28~29)
위의 말씀을 보면 마귀는 자신이 망할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최후 발악으로 한 번 세상을 흔들어 놓고 자기 멋대로 세력을 휘둘러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 역사에서 최후로 나타나는 마귀의 활동입니다.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이며 세계의 통치자로, 이제 이 세상은 그가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사회 구원 운동, 종교 통합 운동, 새시대 운동, 세계 정부 운동 등은 모두 그의 등장을 위한,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세계 통합을 이루어 보기 위한 준비 운동인 것입니다.
666의 표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에서 나타나는 짐승, 곧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를 위해 머리를 짜내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동적으로 적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방법을 연구해 냅니다. 적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한 제도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미국이나 유럽 등지에 가서 물건을 사면 컴퓨터 암호인 바코드 넘버가 찍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어떤 생산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팔려면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등록할 때 그 물품에 대한 모든 내용이 컴퓨터에 기억되며 물건을 파는 곳에서도 컴퓨터가 바코드를 읽고 자동적으로 가격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장차 세계 통치자의 명령으로 그 바코드 넘버를 사람들의 이마나 오른손에 찍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갔을 때 그 표가 없으면 절대로 물건을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컴퓨터가 설치되어 돈 대신 이마나 오른손에 표가 있어야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폐가 필요없게 되고 분실의 위험도 없게 됩니다.모든 사람의 봉급은 은행에 있는 컴퓨터에 기록되므로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 이마나 손에 있는 표만 가지고 컴퓨터에 알아보면 돈이 얼마나 있는지 자연히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은 컴퓨터 인생이 되었고 어디를 가든지 컴퓨터만 치면 그 사람의 모든 내용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취미, 가족 관계, 고향, 학력, 직업, 성격 등등 나타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은 자기의 쓸 것을 위해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계 통치자는 컴퓨터를 가지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조정하게 됩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요한계시록 13:16~17)
이미 이 계획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실행될 단계에 있습니다.바코드 넘버는 굵고 가는 여러 개의 막대기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메어리 S. 렐프 여사의 "세계 정부와 666"과 "세계 독재자와 666"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그러면 666이 무엇인가를 간단히 살펴 봅시다. 계시록 13장 18절에 보면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했는데 짐승이 666마리나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 앞 17절에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수는 곧 짐승의 이름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666이란 뜻입니다.성경에는 숫자가 많이 나와 있는데 거기에는 전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서 3의 수이며 세상은 사방으로서 4의 수입니다. 하나님의 3과 세상의 4를 합한 수인 7은 완전수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7이 많이 쓰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6일 만에 창조하시고 이레 만에 쉬셔서 일주일의 원리가 되었고 7년 대환난이나 70주나 일곱 인봉, 일곱 교회 등 7은 완전수로 쓰입니다. 그런데 그 7에서 하나 부족한 수, 곧 6은 사람의 수입니다. 7에 도달치 못한 것이 사람입니다. 일주일 중에도 6일은 사람의 날로서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일해야 되는 날수입니다.위의 말씀에도 '사람의 수니 666'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6이 셋입니다. 3은 하나님의 수이므로 이것은 곧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었다는 뜻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거짓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고 했습니다.컴퓨터 바코드 넘버는 다 똑같이 이 세 개의 막대 부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호는 6을 표시하는 기호입니다. 바코드 부호는 다시 숫자로 판독되어야 하므로 모든 부호는 다 그것을 의미하는 숫자를 가지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세 개의 줄막대가 왜 다른 숫자가 아닌 6을 의미하는 부호로 정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부호 곧 왼쪽, 중간, 오른쪽에 있는 것을 연결해 읽어 보면 6이 셋이 됩니다.그런데 2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에, 666이 적그리스도의 이름의 표시이며, 그것을 이마나 오른손에 표하게 된다고 기록된 내용이 현재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한국에도 곧 바코드 제도가 실시된다는 기사가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룩셈부르크의 수도 룩셈부르크에는 세계 제일의 컴퓨터가 있는데 이 대형 컴퓨터에 의해 EC의 모든 것이 조종된다고 하며, 그 컴퓨터의 이름이 "Beast(짐승)"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성경의 예언은 이처럼 세밀하며,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현재도 우리 눈 앞에서 하나하나 말씀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말도 하고 일도 하고, 이제 앞으로는 모든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데까지 가게 될 것입니다.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컴퓨터 부문은 고도의 발전을 거듭하여 생체 칩을 사용한 제 5세대 컴퓨터의 탄생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제 5세대 컴퓨터란 인공 지능을 갖추고 사람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논리적 추리를 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컴퓨터를 말합니다.이러한 컴퓨터의 발달과 병행하여 사회 각 방면의 전산화 역시 급속도로 진행되어 이제는 현대 생활의 거이 모든 면이 컴퓨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주개발 계획을 비롯해 거의 모든 은행, 백황점, 병원, 기업, 행정 기관의 업무가 컴퓨터에 의해 수행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남녀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켜 줄 대상자가 될 로봇까지 개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한편 국내에서도 최근 ISDN(국가 전산망 시스템)의 국내시범 사업 계획이 확정돼, 멀지 않아 디지탈 전화기기, 비디오텍스, 텔리텔스 등을 연결하여 홈 워킹, 홈 뱅킹, 홈 쇼핑 등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또한 전국민의 신상 명세서와 전국의 경제 통계 등의 각종 정보가 모두 전산 처리돼, 오는 88년 말부터는 단일 정보 통신망으로 통합, 활용됩니다.또한 세계 각국 은행은 범세계적 은행간 금융 거래 협회인 SWIFT에 의해 전자식 자금 이체(EFT)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자식 업무는 전세계를 현금 없는 사회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크레디트 카드의 분실을 막고 경제 생활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이제 사람의 이마나 손에 개인 번호를 새기기만 하면 모든 경제 행위가 그 표에 의해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666에 의한 세계 통치인 것입니다.
표를 받는 자그런데 중대한 문제는, 666의 표를 받으면 어떻게 되며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물건을 살 때 모든 계산은 그 사람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있는 표를 가지고 할 것이므로, 표가 있는 사람은 컴퓨터 계산기 앞을 통과할 수 있으나 없는 사람은 표를 받아 오라고 거절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얼마 동안은 그렇게 할 것이나 어느 기한이 지나도 표를 받지 않으면 추적을 당하고 색출되면 목베어 죽게 됩니다. 그것은 짐승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목베어 죽는 자는 부활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한다고 했습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요한계시록 20:4)
그러나 표를 받은 자들은 짐승과 함께 멸망의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표를 받았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소요가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백성이 되었으니 함께 지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시록 14:9~11)
아마겟돈 전쟁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련이 이스라엘을 치고 미국이 대항해서 싸우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곧 3차 대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곧 그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전쟁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인류 최후의 전쟁으로 아마겟돈이라고 합니다. 3차 대전과 아마겟돈 전쟁이 연결되어 있는지 시간적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둘 다 세상 끝에 있을 전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계시록 16장 12~16절에는 그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이 말씀에 보면 유브라데강(유프라테스강)의 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 곧 군대들의 길이 된다고 했고, 그들의 대적은 바로 전에 설명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로 되어 있습니다. 그 전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영들이 온 세상의 군대를 다 불러 모아서 싸우는 전무후무한 전쟁이기에 그 전쟁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의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용은 사단 곧 마귀의 본체이며 짐승은 세계의 통치자, 적그리스도이며 거짓 선지자는 이스라엘에서 나와서 적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이적을 행하여 온 세상 군대를 다 모아 싸우게 되는데, 그곳이 아마겟돈이라고 했습니다.필자는 아마겟돈이란 곳에 가 보았습니다. 하이파 항구(엘리야가 숨어 있던 가멜산을 중심으로 항구와 도시가 건설된 곳임)에서 차로 1시간쯤 동남쪽으로 가면 므깃도라는 조그마한 언덕이 있는데 옛날 솔로몬이 쌓았다는 성이 무너진 채로 복구되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 곳에 들어가는 입구 안내에는 "이곳이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세계 종말 전쟁이 일어날 아마겟돈이라는 곳입니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그 곳은 조그마한 언덕이었지만, 그 언덕에서 앞을 바라보면 눈이 닿지 않을 정도의 광활한 벌판이 펼쳐집니다. 그 벌판이 장차 인류 최후의 전쟁터가 될 곳입니다.666의 세력이 세상을 통치하는 동안 잠시 온 세상에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때가 있게 되는데, 그것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지 참된 평화는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그러한 사실마저도 미리 예언해 놓았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1~3)
그렇게 잠정적인 거짓 평화가 잠시 반짝하다가 갑자기 동쪽에서 적그리스도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는 세력이 나옵니다. 그것이 계시록 16장 12절에 있는 동방의 세력이며, 그들은 모두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오게 됩니다. 그 군대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강물이 말라 그 길이 예비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그 강이 어떻게 갑자기 마르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한 10여 년쯤 전에 어떤 잡지에서, 시리아에 있는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에 시리아가 댐을 막아 강물이 줄어들게 되자 이라크에서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현재도 이라크와 시리아는 적대 관계에 있습니다.그런데 그 동방에서 오는 군대들이란 누구일까요? 계시록에 보면 동방의 군대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요한계시록 9:13~17)
여기도 유브라데에 결박된 천사가 놓이니 군대들이 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천사는 타락한 자 곧 사탄을 의미합니다. 전쟁의 열쇠를 잡은 마귀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을지라도 전쟁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세력은 마귀의 세력입니다.결박된 천사가 놓인다는 것은 유브라데의 길이 트인다는 뜻으로, 그 길을 통해 동방의 군대들이 몰려들 것이며, 그 시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예정된 때입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워 세상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 군대인데, 그 동방 군대의 숫자가 2만만이라고 했으니 곧 2억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동쪽에서 2억을 동원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로서는 중공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일본이나 기타의 군대가 가담을 하게 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중공을 방문하고 귀국한 전 미국 닉슨 대통령 당시의 국방장관 슐레진저가 신문기자들 앞에서, 중공은 2억이나 되는 게릴라를 훈련시켜 놓았다고 발언한 것이 신문에 난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중공이 중심이 되어 세계 정부를 향해 들고 일어나면 적그리스도는 세계의 군대를 모아 들여 중공군과 맞서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12. 완전한 창조의 끝
결 과성경을 몇 군데 찾아보면 그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아마겟돈부터 적그리스도가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까지 전쟁이 점차 번져 갑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포위되고 나아가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이 크게 당하는 형벌, 곧 멸망으로 세 번째가 됩니다. 2600년 전 느부갓네살에 의한 것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는 로마의 장군 타이터스에 의해 멸망되어 1900년 간 회복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해방과 함께 회복되어 잠시 평안을 누리지만 곧 2000년 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죄 때문에 한번 더 멸망의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쳐지지 아니하리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 날에 싸운 것 같이 하시리라" (스가랴 14:1~3)
위의 말씀대로 이 전쟁에서는 완전히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가사 열국을 치신다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는 계시록 19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 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요한계시록 19:11~16, 19~21)
양대 세력이 어울려 치열하게 싸우다가 예수님의 재림을 보고(백마 탄 자는 재림하시는 예수님) 합세해서 대항해 보지만 짐승은 잡히고 모든 군대도 다 죽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예수님이 예루살렘 건너편에 있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 옷 입은 두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10~11)
스가랴서 14장 4절에는 이 말씀이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모든 문제는 끝이 납니다. 다니엘서 9장 24절에 말한 대로 죄나 허물이 끝이 나고 예언이 다 성취되며, 의로운 세상이 되어 천 년간 주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천년 왕국이 때는 에덴의 낙원이 회복되는 때입니다. 현재 우리의 육신은 불완전한 미완성체입니다. 우리가 피곤하고 병들고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은 육신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이 육신뿐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차 천년 왕국에서는 피곤치 않으며 죽지 않는 완전한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게 됩니다. 그 때에는 자연계에 내려졌던 모든 저주도 풀리게 됩니다.생각해 봅시다. 아이들이 사자등에 타고 신나게 달리며, 온갖 동물들이 서로 사이좋게 노니는 그 꿈같은 모습을 말입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6~9)
2천년 전에 오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는 이 세상, 곧 자연계의 구원을 목적으로 오십니다.이 세상 끝에는 환난의 때가 있는데, 그것은 계시록 5장을 이해하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 5장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계시록의 내용이 풀리지 않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인봉된 그 책을 받으실 때에 하늘의 영물, 장로들, 수만의 천군 천사들, 땅과 땅 아래 있는 자까지 온 천지가 우렁찬 찬송을 부르는 광경은 어느 위대한 극작가도 표현할 수 없는 참으로 장엄한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것이 무슨 뜻일까요?이스라엘 민족은 옛날 이집트에서 나왔을 때 현재의 팔레스타인 땅을 각 지파별로, 가정별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런데 살다가 가난하여 땅을 팔게 되면 매매증서를 만들어 제사장에게 맡기는데, 그로부터 50년이 지나면 땅은 자동적으로 본 주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만일 그 전에 자기가 돈이 있거나 가까운 친척이 돈이 있으면 50년까지의 남은 기간에 대한 값을 물어주고 땅을 도로 찾습니다.찾을 때에는 제사장에게 가서 문서를 보고 돈을 준비하는데 인봉된 문서를 열고 내용을 알아낸 대로 처리합니다.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너는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되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 증서를 내가 취하여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 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 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예레미야 32:6~12)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위기 25:25)
그런데 태초에 아담이 이 세상을 사탄에게 팔았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잠시 마귀의 것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되는 것입니다. 먼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마치고, 다음에 이 자연계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그 때에 인을 떼면서 심판이 시작되는 광경이 계시록 6장부터의 광경입니다. 마귀가 통치하는 세상이 심판되는 것은 곧 값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서 인봉된 책(그것이 매매계약서임)을 받으시는 순간 온 천지가 우렁차게 찬송을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은 현재까지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로마서 9:19~23)
피조물이 탄식하면서 하나님의 뭇 아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고 한 것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의 숫자가 차게 되면 곧 이어 만물도 회복될 것이므로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창세기 1장 27, 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세상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 부부는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로서 권세를 받았으나 사탄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지금 마귀의 손아귀로부터 하나씩 사람들을 구해내시고 계십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아들의 숫자가 차게 되면, 곧 교회가 완성되고 마지막 날의 환난을 피해 교회는 들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땅이 회복된 후 교회는 주님의 신부로서 주님과 함께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그것이 천년 왕국입니다.
예언대로 오셨고 다시 오실 예수님하나님의 근본적인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를 씨로 삼으시고 그를 통해서 많은 아들을 낳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장차 이 세상에 오신다는 말씀이 수백 번은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한 것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창세기 3장 15절에 있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말씀과 이사야 7장 14절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이 동정녀 탄생에서 성취되었습니다.또 미가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대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함으로써 이미 B.C. 600년경에 하나님의 아들이 베드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유대 나라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 4킬로 정도 떨어진 남쪽 산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은 북쪽 갈릴리 지역 나사렛에 살고 있었습니다. 산월이 가까워질 때까지도 그들은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를 낳아야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구스트 황제가 모두 본적지에 가서 호적을 새로 하라는 명을 내려서 뜻하지 않게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내려가 아들을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말씀이 거짓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세상 군주를 사용하신 것입니다.일찍이 다윗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시편 22:1)라고 부르짖은 말 역시 예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는데, 그 뜻이 바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태복음 27:46)
시편 22편 16~18절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손과 발이 못박히신 것과 로마 군인들이 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뽑은 사실이 마가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개 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어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시편 22:16~18)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마가복음 15:24)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는데, 한 번은 열 한 제자가 비밀히 방문을 닫고 있을 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이시면서 믿으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하신 사실은 성경의 예언을 성취케 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누가복음 24:36~45)
이와 같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성경의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입니다.요한복음 1장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고 했습니다. 말씀이 어떻게 육신이 되어 올 수 있습니까? 또한 요한1서 1장 1절에는 "태초부터 있는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으니 참으로 이상한 말입니다.보통 사람들은 말이란 듣기만 하고 보거나 만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A라는 청년이 B라는 처녀에게 전화로 데이트 약속을 했습니다. B양은 분명히 A의 음성을 들었는데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에 가서 기다려도 A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게 될 것이므로 그것은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예수님은 구약에 계속 예언되어 왔고 약속되어 오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오시면 인간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오시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정확히 오셨습니다. 구약의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약속을 이루는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정확한 사실이 어디 있습니까?그런데 두 번째 오신다는 예언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4:29~3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전서 1:10)
이렇게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똑똑한 척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비웃고 조롱한다고 했습니다.
"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3~7)
세상 사람들이 믿든지 믿지 않든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도 사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말씀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휴 거 창세기 1장 27, 28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 부부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정복하라',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곧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들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그 왕권을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이 세상의 왕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1절에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했으며 누가복음 4장 5절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내가 네게 준다'고 하면서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 이라고 했습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마귀로부터 통치권을 회복하시고, 이 세상을 통치하시려고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때 같이 오는 자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이며, 그들은 이방의 때가 끝이 날 때에 들림받은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방의 때가 계속되는 동안에 이방인을 위한 구원의 수가 차서, 마침내 끝이 날 때에는 들림받게 되는 것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6, 17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원받고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구원받은 후 생존해 있던 자들은 공중으로 끌어 올려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은 눈에 보이는 저 창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로서,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 52절에는 같은 말씀을 '변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처럼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창조의 완성입니다.현재 우리의 몸은 불완전한 미완성체입니다. 그래서 피곤하고,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몸입니다. 그래서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병들지 않고, 피곤치 않고, 죽지 않는 몸이 됩니다. 주님은 때때로 방안에, 때로는 해변에, 또 어떤 때는 엠마오의 도상에 갑자기 나타나시고, 잡수시기도 하셨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그것이 몸의 구원입니다. 로마서 8장 23절의 말씀과 같이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것이 구원입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인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부활의 생명'이 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라고 한 것처럼 부활의 생명을 받는 것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변화될 사람은 반드시 거듭나야 됩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거듭나서 부활의 영을 가지고 있어야만 변화되고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누가복음 17:34~35)
들림받는 일은 전 지구상에서 한 날 한 시에 일어날 일이므로 위와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같은 시각이라도 한 쪽은 낮이고 다른 한 쪽은 밤이며, 또 그 양 옆은 각각 아침과 저녁이 됩니다. 그러므로 밤에 잠을 자던 사람과, 아침 저녁 식사를 위하여 매를 갈고 있던 사람과, 또 낮에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에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여 갑자기 없어져 버리고, 다른 하나는 남아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환난이 시작될 지구 위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조: "Raptured", Thomas S. McCall and Zola Levitt, Harvest House Publishers, 1975.
네 가지 교회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일곱 시대의 교회가 나오는데, 그 중 처음 세 교회는 휴거 때까지 가는 교회가 아니어서 휴거나 환난에 대한 말씀이 없으나, 넷째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사데, 빌라델비아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관한 말씀 중에는 말세와 관계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넷째인 두아디라는 중세기 암흑 시대 천주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장 22절에 보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교회는 들림을 받지 못하는 교회입니다.다섯째 사데 교회는 종교 개혁에서 시작된 신교로서, 그 이후부터 교회의 흐름이 여섯으로 갈라졌기 때문에 '교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 3장 3절에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라는 말씀이 있고,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4절에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라고 되어 있으므로 이 교회 중에 있어도 구원을 받지 못했으면 휴거에 참여치 못합니다.여섯째는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이 교회는 참 복음의 계통으로서 지금부터 약 백 50년 내지 2백 년 전부터 일어난 복음의 역사에 속한 교회입니다. 챨스 피니, D.L. 무디, 요한 웨슬레, 프레이나드, 죠지 무디, 진젠돌프 등에 의해서 복음이 활발히 전해져, 거듭나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던 시대입니다. 현재 거듭난 자는 이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3장 10절에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고 했습니다. 이는 마지막 7년 환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는 앞의 세 교회가 혼합된 시대, 곧 최후의 시대인데, 참으로 비참한 모습입니다. 본다고는 하나 눈이 멀었고, 부자라고는 하나 가난하고 벌거벗었으며,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 놓은 시대입니다.
추수기가 지난 후예레미야 8장 20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밀은 여름이 추수기입니다. 천국의 알곡은 휴거되어 천국 곡간에 추수되어 갑니다. 휴거가 지나면 추수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 때 이 세상에 남은 자 중, 전에 말씀을 들었던 자의 입에서 "우리는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구나,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되었구나"하는 비통한 절망의 소리가 흘러 나올 것이며, 그들은 가슴을 치고 땅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그 때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2절로부터 30절에 있는 말씀과, 마태복음 7장 21절로부터 23절까지에 있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이 한 번 닫힌 후에 문을 두드리는 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실 때, 여러 마을을 다니시면서 전도하셨는데, 그 때 제자들이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하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 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누가복음 13:24~27)
평소 전도할 때에 듣고, 전도자와 함께 음식을 먹었으면서도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위의 성경 말씀처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주님께서 모르신다고 하시게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 영혼에 안식이 없었고, 예수님 안에 영혼의 주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은혜 받으러 다닌다고 이곳저곳 다니면서도 참 평안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3장 49~50절 말씀에 보면,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고 했습니다. 자기는 구원받은 줄 알고 있는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구원받지 못한자들을 갈라낸다는 뜻입니다.독자들이여, 성경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그냥 보고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심판과 예수님의 재림과 영원한 형벌과 기타 모든 것이 다 사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찾는 마음만 있다면 이 문제도 해결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거듭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