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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식품, 그리스도인이 먹어도 될까?
여러 욕구 중 음식에 관한 인류의 집착은 유별나다. 사람들은 하루도 음식에 관해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최초의 언약도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으로부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를 제외한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식물로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이전까지는 최소한 별다른 노동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풍부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인간은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뒤엉킨 땅에서 땀흘려 일해야 양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노아 홍수 이후 사람들은 또 한 번 식생활의 변화를 겪게 된다. 노아와 그 가족은 하나님으로부터 산 동물의 고기를 채소같이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받는다. 학자들은 이같이 자료를 근거로 대홍수 이전의 모든 사람들은 채식만을 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한다. 아마도 하나님의 원칙대로만 살려는 사람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 이전부터 육식을 몰래 즐기는 부류들도 있지 않았을까? 성경이 그런 암시를 주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성경적으로 보면 일부 경건치 못한 사람들은 육식을 즐겼을 것으로유추된다. 홍수 이전시대라면 육식은 모두 혐오식품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음식이었을 수도 있다. 오늘날의 술, 담배처럼 인간의 절제를 요구하는 음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홍수 이전에는 채식만으로도 사람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홍수 이후 지구 환경은 급변했다. 지역별 온도의 변화가 커지고 추위와 더위가 극심해졌다(창 8:23). 스테미나 음식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 아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신다. 다만 육식에 따르는 약간의 규범을 정하셨다. 이 규범이 우리에게 흥미를 가져다 준다.

서두에서도 말했듯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음식은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다. 그러기에 음식물 섭취가 때로는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부 비만아들과 주부들의 경우가 그렇다. 통제된 규율 사회인 군대 안에서도 그런 예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식품은 '영양소를 한 종류 이상 포함한 화학적 물질로, 유해물질이 없는 식용천연물 또는 식용가공품'을 의미한다. 우리는 매일 수분을 포함하여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등을 음식을 통해 섭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식품의 일반성분과 더불어 빛깔, 맛, 냄새 등을 내는 식품의 특수성분, 배당체(당분에 특별한 성분이 결합하여 주로 식품 중에서 독특한 생리작용을 하거나 쓴맛 또는 유독한 성질을 내는 식품의 성분), 알카로이드, 부패물, 발효물질, 미생물, 기타 독성물질 등을 함께 섭취하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이와 같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하는 화학물질들이 우리 몸 안에서 소화, 흡수되고 배설되며 또한 해독되는 것일까?

과연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우연히 이 모든 기능들이 가능해진 것일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저 이같은 놀라운 일을 아주 단순화시켜서(물론 우리가 보기에 단순할 뿐이지 지극히 복잡하다) 우리 몸 안에서 조절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혐오식품이란 무엇일까? 혐오식품이 거의 예외없이 노아 홍수 이전과 다름없이 육식과 관련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물론 성경에 혐오식품이란 말은 없다. 그러나 부정한 짐승에 대한 성경의 규정이 식품을 자리매김하는 데 참고가 될 수 있다. 식품 공전 상에서도 혐오식품에 관한 규정은 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에 일반 사전에 등장하는 용어도 아니다. 다분히 언론이 만들어낸 용어라고 보아진다. 그럴 경우 아마 일반인들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음식을 말함일 것이다.

현행 식품위생법 상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 약품이 아닌 것은 모두 식품으로 규정된다. 그런데 이 식품을 판매할 목적이라면 반드시 관할 구청에 신고해야 된다는 법규로부터 문제가 등장한다. 모든 혐오식품들도 먹는 것이고 유통과정을 통하여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강아지도 식용으로 사용하자면 법규상으로는 식품으로 신고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철탕에 대한 외국의 시선이다. 외국을 의식해서도 개를 식품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만일 개가 법규로 규정된 식품으로 선포되면 외국의 언론들이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고민이 발생한다. 축산물 위생처리법 상에도 개는 축산물관리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렇다면 식품으로 도축된 개들은 우리의 법 상으로는 일단 모두 위법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우리의 여름은 유별나게 혐오식품과 연관되어 있다. 태국 등 동남아 등지를 여행하던 한국 관광객들이 보신용으로 뱀 등을 섭취한다거나 밀도살한 곰이 경찰에 발각돼 현지 주민들과 언론의 지탄을 받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도로 접하곤 한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스테미나 문제에 강박관념이 있는 편이다. 아마 오랜 가난함과 혹시 스테미나에 대한 남모르는 열등감이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민족적인 특성일 수도 있다. 문제는 영양 결핍이 문제시되지 않는 지금에도 이런 것들이 범람하는 이유가 무언가 하는 것이다. 외국의 모 언론은 희귀한 전세계 코뿔소 코뼈의 절반이 한반도에서 소화되고 있다는 과장된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 아니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워낙 은밀히 거래되고 있으니까. 문제는 보신 음식이나 혐오 음식들이 그다지 저렴한 가격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교적 부담없는 가격으로 이들을 얻을 수 있는 동남아 등으로 종종 이들 혐오식품 섭취 관광단이 배회하고 있음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서 자주 목격한다. 혐오식품매니아들이 즐기는 것은 단순히 사철탕을 넘어 지렁이, 불개미, 동면개구리, 뿔종류, 피 종류, 쓸개 종류, 동물생식기 종류, 독사 등 어느 것 하나 마다하는 것이 없다. 뱀 쓸개나 잉어 쓸개의 독성이 급성신부전증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가물치회나 열대의 뱀 등을 생식할 때 몸에 들어오는 열대 기생충인 나토스토마에는 아직도 특효약이 없다. 일부 해양 물고기 등을 생식할 때에도 아나사키스 홉충과 같은 희귀한 기생충이 우리 몸에 침투할 수 있다. 뱀에는 혈관을 타고 돌아다닐 만큼 기생충이 많다. 심지어 우리 국민이 유난히 즐기는(?) 웅담에도 박테리아와 트리스티세르코치스와 트리치넬라 속선 모충이라는 유해한 기생충이 존재한다. 태국 최대 '두싯 동물원(Dosit Zoo)'의 원장이며 수의사인 알롱콘 마하놉(48) 박사에 의하면 이것이 인체에 들어갈 경우 간과 비장에 치명적인 손상이 올 수 있다. 또 곰에게서 호흡기를 통해 유입될 수 있는 탄저병의 병원체는 폐렴이나 균혈증(菌血症)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피는 온갖 잡균과 독소와 노폐물과 기생충의 통로이다. 동물이 도살될 때 받는 동물의 스트레스는 동물체 내(피)의 독소 내지는 노폐물 분비와 관련된다. 포화지방으로 되어 있고 노폐물들이 쌓여 있는 동물의 기름도 마찬가지이다. 혐오식품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런 식품 위생학적 상식이나 의학적 상식이 너무 무지한 편이다. 그에 비해 육식할 경우 날로 먹지말고 구어 먹으라는 말씀이나 피, 기름 등을 먹지 말라(신 12:23, 24, 레 3:17)는 성경의 말씀은 오늘날의 위생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영양학적으로도 특수 음식이나 특수 보약 등을 섭취하면 우리 몸에 상당한 부담이 따르게 된다. 중금속이나 특수한 배당체, 알카로이드, 특수 단백질, 특수 기생충, 톡신(Toxin) 등에 노출될 수 있다. 이것들이 위장과 간, 콩팥 등에 부담을 주게 된다. 우리 몸이 늘 감당하던 물질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이런 특수 물질들이 약리적 작용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상인들에게 굳이 그런 것이 필요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할까?

하나님은 유별난 음식에 별 관심이 없으셨다. 하나님이 주신 만나도 교활한 사람의 입맛에는 별 효과가 없었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던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 파, 마늘 등 온갖 향신료 등을 그리워하며 노예 시절을 그리워했다(민 11:5). 엘리야가 얻은 음식이나 예수님이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상 접했던 떡과 고기일 뿐이었다.

필자는 얼마전까지 팔당 호수변에 살았던 관계로 여룸만 되면 개도살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했다. 교회의 모임이나 행사의 일환인 경우도 일반인들 모임 못지 않게 빈번한 편이다. 개울가 잔인한 도살 장면은 아무래도 보기에 민망하다. 점잖게 남들이 도살해 놓은 것을 잡수시는 어른들도 그다지 좋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어찌하든 식당에서도 현행법상에서는 밀도살된 보신탕을 우리의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신나게 여름나며 즐기고 있는 것이다.

혐오식품의 경우 대부분 일반 음식보다 값이 나가고 도축에 관한 규제가 없으므로 위생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다. 비합법적이기까지 하다. 더욱이 영양이 부족한 시대도 아닌데 굳이 즐겨가면서까지 찾을 필요가 있을까? 혹시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안타까운 북한 사회의 서민들이라면 하나님이 용납하실지 모른다. 보신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죄송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서는 모양이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

혐오식품을 별로 손대지 않는 평범한 서구인들이지만 우리보다 평균적으로 건강하게 장수하고 있다. 우리와 체질이 유사한 일본만 해도 혐오식품에 우리처럼 유별나지는 않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훨씬 장수하는 편이다.

모든 것을 그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니까 무조건 아무 것이든 거리낌없이 먹고 마시면서 할렐루야 외치고 감사함으로 먹으면 된다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잘못된 일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지 살펴서 해야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심지어 먹고 마시는 일까지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먹고 마시되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않도록(고전 10:32)하라고 했다.

식물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이 아닌 바에야 왜 굳이 그런 것들을 몸에 좋다고 먹으려고 하느냐는 의미인 것이다. 유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식물의 유익은 지극히 작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를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고 우상에 바쳤던 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해 바울이 했던 고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거리끼지 않을지 모르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고전 8:12)이라고 하였다.

은혜 가운데 모든 것이 괜찮다 식의 의식없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이 문제이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 되도록 참기보다 즐기고 싶어한다. 술, 담배 하는 것이나 기독교인들이 기호식품이나, 혐오식품 등에 대해 갖는 유별난 관심은, 절제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는 별차이가 없다고 보여진다. 오늘날 혐오식품에 관한한 기독교신자나 비기독교인 사이에 별다른 입장차이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술, 담배 등 기호식품에 통제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유별나단 경우도 많은 듯하다.

이제 음식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보자.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든 식물은 거룩하다 하였고(막 7:19) 예수님도 이 문제에 관한한 관대하신 듯하다. 하나님이 지은 것이 모두 선하다고 하였다(딤전 4:4). 하지만 우상에 바친 제물이나 목메어 죽인 것과 피는 금하라고 하였다(행 15:20). 목메어 죽인 것이나 피도 우상제물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렇다고 나머지 모든 음식에 대해서 성경이 무절제하게 권하지는 않는다. 음식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는 것은 비록 아니지만(고전 8:8) 우리의 자유함이 혹시라도 약한 자에게 거치는 것이 된다면 형제를 실족치 않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고전 8:9-13).

결론적으로 기호식품 정도라면 섭생에 있어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기호식품이나 혐오식품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지나치게 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절제가 요구된다. 예수님도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값비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아마 그런 혐오음식들은 가까이 하시지 않을셨을 것이다. 예수님의 관심은 주로 세상의 연약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부분 혐오식품들은 서민의 손길을 떠난 고급식품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마지막에 절제를 두신 이유를 한 번쯤 생각해 보자.

그래도 굳이 참기 어려운 성도와 목회자들이 있다면 다른 성도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거침이 되지 않도록 아주 은밀히 즐길 일이다. 과소비, 무절제와 낭비는 지금 우리 사회를 어둡게 만들어 놓았다. IMF 시대를 맞아 모든 것을 사랑의 방법으로 하려고 했던 바울의 지혜(롬 14:13-21)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여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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